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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Aug 01. 2022

칼이 날아오는 문 개방 출동

2018년 어느 여름 저녁에

구급대원으로 5년째 되는 해였다. 구급출동은 해마다 꾸준히 늘어났다. 구급대원으로 활동해보니 심정지 상황이나 뇌졸중, 외상환자 등 정말 구급차가 필요한 응급출동의 비율은 약 20% 정도였고 나머지 80% 그냥 콜택시(병원을 가고 싶지만 택시비가 아깝거나 택시를 잡기 힘들어 택시 대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민원인, 구급대원들은 이때마다 구급차가 콜택시 같다며 생긴 말임) 출동이나 주취자 처리 같은 비응급 출동이었다. 그중 특이한 출동을 소개한다.      


종종 실종자 관련 출동을 할 때가 있다. A가 자살 암시 문자를 보내고 연락이 두절됐으니 A를 찾아야 하는 출동이다. 실종자 출동의 대부분은 실종자와 보호자가 서로 연락이 되어 마무리가 되는데 간혹 몇 시간 이상 실종자를 찾으러 다니는 경우가 생길 때도 있었다. 이번 출동이 그런 경우였다. 그럴 때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실종자의 전화기가 꺼진 마지막 위치 또는 실종자의 집이다. 2018년 5월 경, 실종자 수색 출동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4년 전 시간을 순서에 맞게 재구성했다(기억에 의존해서 쓴 글이라 정확하진 않습니다. 참고만 하세요).

23:40분경, 이제 현관문 자물쇠를 파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리치던 실종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자살 시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 급한 마음에 서둘러 들어가려 했다. 막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현관문을 여는 찰나였다. 싸한 느낌에 앞을 봤는데 부엌에서 쓰는 칼이 우리 앞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열었던 현관문을 얼른 닫았다. 칼은 문에 맞아 쨍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다행히 나를 비롯해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에 있는 경찰, 소방관 모두들 깜짝 놀랐다. 칼이 날아올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조대를 포함한 다른 소방관은 모두 뒤로 빠졌다. 이젠 형사를 비롯한 경찰이 활약할 시간이었다. 형사 2명과 나머지 경찰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으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나를 포함한 구급대원 3명이 들어갔다. 우리에게 칼을 던진 사람은 다름 아닌 실종자로 신고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이 사건이 일어나기 2주 전, 내가 구급출동을 했던 집이었다. 아내가 남편의 눈 부위를 때려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했으나 남편(실종자로 우리에게 칼을 던진 사람)은 아내와 다투는 과정에서 눈을 맞은 것뿐이고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간단히 소독만 하고 철수했었다. 나중에 현장에 도착한 실종자의 부모님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아들(실종자)이 평소 아내와 자주 싸웠고 그로 인해 아내는 집을 나갔으며 이를 낙담한 아들이 자살 암시 문자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 부모님은 경찰에게 제압된 아들을 보며 왜 이렇게 사냐고 안타까워하며 울고 계셨다. 흥분한 실종자는 현장에 도착한 부모님에게도 욕을 해댔다. 경찰은 우리에게 칼을 던진 실종자를 단단히 제압했지만 실종자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몸부림을 쳤다. 그럴수록 경찰은 더 세게 실종자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욕을 하며 몸부림을 치던 실종자는 끝내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향했다.

구급차에서 쓰는 주 들것(메인 스트레처 카) (출처 : https://blog.naver.com/medicarmaster/221712718221)

소방학교에서 구급 관련 교육을 받을 때 교관님들이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파트에서 현관문을 들어갈 때 꼭 주들 것(메인 스트레처 카)을 먼저 들여보낸 후 구급대원이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우리가 들어갈 때 나쁜 의도를 지닌 사람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으니 주들 것으로 미리 방어를 하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하더라도 1명은 주변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혹시 구급대원의 등 뒤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흉기를 휘두를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해야 된다고 했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응급처치를 하다 공격받고 다치거나 순직한 구급대원들이 있다고 했다. 교육받을 때만 해도 설마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건 내 생각일 뿐 현실은 달랐다. 하마터면 나와 후배 구급대원들이 우리나라에서 구급활동 중 다치거나 순직한 생생한 사례가 될 뻔했다. 지금이야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1초만 먼저 들어갔더라면 크게 다칠 뻔했다. 남을 도우려 했는데 해를 입을 뻔한 어이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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