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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01. 2022

내가 운동하는 이유

소방관 세계에서 보통 사람이 사는 법

화재진압장비 착용 시 무게

난 보통 체격에 보통 키를 지닌 보통 사람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소방관 하면 으레 슈퍼맨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 직업과 나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 이 직업을 계속하고 싶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왜냐면 불을 끌 때 입는 방화복, 공기호흡기 등의 무게가 20kg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재진압장비(이하 장비라 한다)를 갖춰 입은 상태에서 다른 장비(화재진압용 호스, 문 파괴장비 등)를 지니고 다니는데 그 무게까지 더한다면 아마도 25kg이 넘지 않을까 싶다. 그 무게를 이겨내면서 3-4시간 불을 끄려면 근력, 심폐지구력 등이 필요하다. 평소 체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아마 30분 이상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 7월이라 슬슬 벌집제거 활동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그때도 체력이 필요하다. 왜냐면 벌쏘임을 막기 위해 입는 벌 쏘임 방지복(이하 보호복)이 있다. 흰색이며 헬멧과 상의, 하의가 일체형 또는 둘로 나눠져 있다. 벌이 보호복 위에 앉아있지 못하게 매끄러운 재질로 되어 있으며 안으로 뚫고 들어올 수 없도록 어느 정도 두께도 있다. 그 보호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옆에 달린 지퍼를 닫는 순간 내부 온도는 체감 40도가 넘어간다. 보호복을 입어야만 안전하게 벌집제거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워도 참아야 한다.      


벌집제거 출동 대부분의 경우 쌍살벌이나 말벌집 제거 출동은 2~30분 안에 작업이 끝난다. 하지만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이나 장수말벌(나무 안, 땅 속 등 여러 곳에 집을 지으며, 일반 말벌보다 2배 정도 크다) 같은 경우는 작업이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바깥에서 보호복을 입은 채 1시간 이상 삽질을 계속하다 보면 열탈진이 와서 그늘에서 쉬어야 할 때가 온다.      


열탈진은 한여름 오후 1시경 바깥에서 운동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피로가 몰려온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갑자기 특정 부위의 근육이 떨리며 몸이 확 처진다. 그리고 현기증이 찾아올 때도 있다.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벌이 날아다니는 작업장소에서 열탈진을 느끼고 안전장소까지 가려면 대략 2-30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그때 느껴지는 2-30미터는 평소로 치면 1km 전력 질주 후 마지막 20m를 남겨두고 뛸 때의 거리와 비슷하다. 정말 숨차고 힘들어서 할 수 없는데 “조금만 참자“를 되뇌며 나를 다독인다, 그리고 한 발씩 내딛는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어떻게든 가야 한다. 이때 체력단련 효과가 나타난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 상태에서 못 움직이고 쓰러질 수 있다. 쓰러지면 못 움직일 테고 그러면 죽게 된다. 가끔 운동하다 지칠 때면 화재현장에서 탈출구가 10m 앞에 있다. ”정말 지치고 힘들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어떡해서든 몸을 움직여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 이런 상상을 하며 마지막 운동 세트를 채울 때도 있다.        


우리 회사(밖에서 소방서라 하지 않고 그냥 회사라는 표현을 쓴다)에는 나보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다. 난 중간 정도 수준이다. 그들과 나는 운동 수준 자체가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중학생이라면 운동을 잘하는 그들은 성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들은 주로 특수부대 출신이 많다(육군 특전사가 90%, 나머지 10%가 해군이나 기타 특수부대 출신). 그다음으로는 운동선수나 체육 관련 전공 출신이 더러 있다. 이를테면 중학교 다닐 때까지 육상 선수였거나 체육 전공으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부류로는 자전거나 마라톤, 철인 3종 경기 대회에서 입상한 사람들도 있다. 일단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해야 하니 내가 운동하는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겠지만(정말 같을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4시간 30분 만에 제주도를 일주하는 사람과 어찌 같아질 수 있을까?) 비슷하게는 되지 않을까 늘 이런 생각을 하며 운동한다.

     

소방관으로 살아남기 위해,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운동을 계속해왔다. 1주일에 보통 5~6일 정도는 하루 1시간 이상 땀을 흘린다. 회사에 출근해서는 유산소 운동으로 HIIT(High Intensity Interva Training) 프로그램을 한다. 트레드밀에서 10분간 걸으며 가볍게 몸을 푼다. 그리고 15km 속도로 1분간 달린다. 그 후 6km 속도로 4분간 걷는다. 이게 1세트다. 총 5세트를 반복한다. 세트가 끝나면 10분간 다시 걷는다. 이게 마무리다. 근력 운동으로는 턱걸이 30개 이상, 딥스 50개 이상, 맨몸 스쿼트 60개, 런지 40개, 팔굽혀펴기 120개를 한다. 5년간 구급대원 활동을 하다 보니 허리디스크가 생겨 코어 운동은 따로 하지 않는다. 백년허리 저자 정선근 의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처럼 걷기와 달리기 운동이나 책에서 나온 간단한 스트레칭만 하는 수준이다. 이게 내가 출근해서 하는 운동이다.  

    

집에서는 트레드밀 대신 얼마 전에 구입한 스피닝용 사이클을 사용해서 HIIT 프로그램을 한다. 달리기와는 달리 4분 동안 질주 2분 휴식이 1세트다, 총 5세트를 한다. 세트 앞뒤로 5분~10분 정도 천천히 자전거를 타며 지친 다리 근육을 풀어준다. 회사에서와 같이 40분~50분 동안 스쿼트 등 맨몸 운동을 할 때도, 20층 계단 5번 오르기, 동네 뒷산 등산을 할 때도 있다.        


가끔은 이렇게 운동하는 게 싫을 때도 있다. 그냥 하루 편하게 쉴까? 그런 유혹에 시달릴 때도 있다. 한 달에 1~2번 정도는 그런 유혹에 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다치거나 아프지 않으면 어떡해서든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는 편이다.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떨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양의 운동을 해도 내겐 효과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꾸준히, 열심히 운동하려고 노력한다. 운동에 관해서는 난 토끼가 아닌 거북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세울 건 꾸준함 뿐이다.      


신입 시절 같은 소방서에 근무한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는 화재진압대와 구급대 경험을 거친 나와는 달리 모든 운동을 잘해서인지 구조대 생활을 꽤 오래 했다. 특수부대 출신이 아닌데도 특수부대원 출신 구조대원보다 훨씬 운동 수행능력이 좋았다. 몸이 큰 편은 아니지만 근육이 많아 몸 전체가 울퉁불퉁한 모습이다. 그저 보는 순간 ”쟤는 운동 잘하겠구나. “ 하는 느낌이 오는 친구다. 그 동기가 내게 말했다. ”00형, 형이 운동 정말 열심히 하는 건 진짜 인정한다. 다만 잘 안 늘어서 그렇지(웃음), 아마 열심히 하는 걸로는 형 따라올 사람 별로 없을 걸. “ 그 말이 내겐 최고의 칭찬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내가 운동을 최고로 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맡은 일을 잘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기에 운동을 했을 뿐이다. 오늘도 난 화재현장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각종 구조나 구급활동을 잘 수행하기 위해 땀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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