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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Jul 18. 2022

태어나서 이렇게 운동 많이 해본  적은 없다.

2013. 7월 3주간의 최강소방관 경기 준비

2013년 6월 말이었다. 한창 구급대원으로 활동 중이었고 아내는 5달 뒤에 둘째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막 이사를 마무리한 시점으로 기억한다. 2012년 현장지휘과 대응안전팀에서 내근으로 같이 근무했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 : 반장님(나이는 나보다 1살 어렸으나 회사 경력은 4년 선배로 서로 반장님이라 부르며 존칭을 씀), 통화 괜찮아요?

나 : 네, 괜찮습니다. 잘 지내세요?

선배 : 여긴 여전히 바쁘죠 뭘, 하나 부탁할 게 있어 전화했어요

나 : 네, 제게 부탁할 게 뭐가 있을까요? 아무 힘없는 구급대원입니다 ㅠㅠ 안 그래도 진상 고객님 때문에 퇴근시간이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퇴근하네요(보호자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00에서 40km 떨어진 병원으로 어쩔 수 없이 이송함,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음, 민원 넣으면 이송한 구급대원이 골치 아프게 됨)

선배 : 이번에 반장님이 최강소방관 경기 나갔으면 해서 전화했어요

나 : 네? 제가요?

선배 : 구조대에서 1명 나가고 나머지 1명은 센터(일반 파출소와 비슷한 개념,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이 있음)에서 나갔으면 해서.... 여러 명 전화했는데 다들 안된다고 하네... 반장님, 나 한 번만 도와주라....

나 : (같이 근무해서 뻔히 그 어려움을 이해함, 한숨을 내쉬며) 어쩌죠, 저 곧 둘째 나오기도 하고... 사정이 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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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간의 통화 후 결국

최강 소방관 경기 지원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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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가했던 2013년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최강소방관 경기는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1. 호스 끌기(8벌의 호스를 어깨에 메고 50m 달리기, 처음엔 가볍게 느껴지나 달릴수록 점점 무거워짐)

                             2. 해머 치기(90cm 높이의 박스 위아래를 각 1회씩 쳐야 함, 총 50회)

3. 호스 끌어올리기(65mm 호스 2벌, 약 20kg을 7m 높이로 끌어올리기)      4. 마네킨(25kg) 30m 끌기  

5. 사진은 없지만 6층까지 빠른 속도로 계단을 올라가서 종을 치면 끝! (사진 출처 : 세이프타임즈 블로그)


크게 5개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약 3분 남짓(1등이 1분 58초, 난 3분 30초)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힘을 써야 하는 5개의 코스를 지날수록 계속해서 숨은 차오르면서 저절로 힘이 빠지는 아름다운 소방관 경기다. 특히, 마지막 과정인 6층까지 계단 오르기를 할 때면 엉덩이에서 근육 경련이 날 때도 있었다.


물론 나 혼자 이 과정을 준비할 순 없었다. 00 소방서에서는 나 포함 총 3명이 이 대회를 준비했었다. 교관 1명, 지원자 2명이었다. 그 지원자 2명 중 1명은 특전사 출신에 어렸을 적 축구부를 했던 20대 후반의 후배였고 나와는 체력 수준 자체가 달랐다. 즉 후배는 에이스, 난 최소 지원 인원이 2명이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차출된 버리는 카드였다.  그리고 교관은 000 주임님(해병대 출신, 최강소방관 대회 전국 3위 입상으로 특진한 이력의 소유자, 철인 3종 경기, 스쿠버 등을 즐기며 체력이 매우 매우 뛰어남, 구조의 달인)이었다.


어마어마한 이력을 지닌 교관과는 반대로 정작 최강소방관 경기를 뛰어야 할 선수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몇 달 전부터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00 소방서는 사정상 준비기간이 3주밖에 없었다. 2013년 7월 1일부터 나와 후배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체력훈련 및 경기 준비를 했다. 구급대원과 구조대원으로 근무날엔 오후 5시까지 훈련을 마치고 난 후 열심히 일했고 비번 날엔 쉬지 않고 역시 같은 시간 동안 반복해서 훈련한 후 퇴근했다. 그때 난 내가 마치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느낌이었다.


최강소방관 경기에 입상해 특진한 주임님의 훈련 지도가 시작됐다. 일단 주임님은 히딩크 감독처럼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며 오전 내내 달리기를 시키셨다. 물론 본인도 우리와 같이 달렸다. 그러니 힘들어도 참고 참으며 뛸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선배의 권유라지만 내가 한다고 나섰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전 내내 달리기 훈련이 이어졌다. 몸을 푼다며 최소 15km 이상 달린다. 그리고 인터벌 훈련이 이어진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250m 길이의 언덕을 뛰었다. 이것 역시 30분 정도 반복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힘들어 지칠 때면 그제야 우리의 상태를 보시고는 쉬게 하셨다. 가끔은 언덕 대신 15층 높이의 아파트 계단을 뛰어오르는 걸로 대신하기도 했다. 언덕이든 계단이든 난 달리다 중간에 퍼져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헉헉대며 걸어서라도 올라가는 걸 수도 없이 반복해야 오전 훈련을 마치게 됐다.


그렇게 땀을 흘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면 처음에는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훈련 중간중간 이온음료를 마셔도 끊임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물만 들이켜거나 냉면을 주문했으나 절반도 못 먹고 국물만 떠먹기 일쑤였다. 3주간의 훈련 중 1주일 정도가 지나자 그제야 면도 다 먹게 되고 밥을 시켜서 여유롭게 먹을 수도 있었다.


점심 먹고 1시부터는 최강소방관 경기를 똑같이 따라 하는 시간이었다. 호스 끌고 달리기를 하면 일단 숨이 가빠졌다. 65mm 호스 1벌은 약 10kg이다. 이게 8벌이 연결된 채 바닥에 있고 출발 신호와 함께 그 호스 끝을 어깨에 메고 뛴다. 처음엔 가볍지만 뛰어갈수록 길게 펴진 호스의 무게가 점차 느껴진다. 점점 어깨는 무거워지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50m 지점에 호스를 놔두고 바로 10여 m를 가볍게 뛰어간다. 해머 치기 50회 차례다. 90cm 크기로 된 박스의 천장과 바닥을 차례로 치는 게 1회다. 이걸 50번 반복해야 한다. 해머는 약 6kg인데 생각보다 묵직하다. 박자에 맞춰 치면 일정한 리듬이 생기며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 50회를 치는데 빠르면 30초 정도 걸린다. 하지만 해머 치기를 연습하는 동안엔 장갑을 끼고 연습했어도 해머를 쥐는 부분의 양손바닥 껍질이 다 벗겨져 한동안 쓰라림을 느껴야 했다.


해머로 박스를 치고 나면 얼른 훈련탑 2층으로 뛰어가 20kg 정도의 호스 2벌을 끌어올린다. 그나마 이게 제일 쉬웠다. 다만 다리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빨리 내려오려다 보면 다리가 꼬여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타닥타닥 2번씩 끊어서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또 10여 m를 헉헉거리며 뛰어가 25kg의 마네킨을 끌고 30m를 이동한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 안 되는 무게인데 힘이 빠진 그땐 왜 그리도 무겁게 느껴지던지, 마네킨을 끌다가 경기선 바깥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후엔 대망의 마지막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차오르는 숨을 삼켜가며 마네킨 끌기를 마치고 나면 또 10여 m를 뛰어가 훈련탑 건물로 진입, 6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힘드니까 계단 손잡이를 잡고 팔힘으로 당기고 다리는 계단을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만 참으면 돼, 좀만 더 참자,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야 마지막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6층에 도착해서 감독관 앞에 놓인 종을 치면 끝이 났다.


원래 훈련 초반에 나온 연습 기록은 4분 30초였다. 그나마 3주 동안 되지 않는 몸으로 어마어마한 이력의 코치가 붙어 힘들게 운동했기에 1분 정도 단축한 3분 32초의 기록을 만들 수 있었다. 절대 내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기록이었다. 물론 소방서의 어느 누구도 내가 입상하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같이 운동한 그 후배는 2분 10초대의 기록으로 경기도 3위 안에 들지 못해 아쉬워했다.


20일간 하루 7시간씩 운동을 했더니 훈련시간이 끝난 저녁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쳐서 몸을 누이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게다가 난 운동 신경도 없고 몸도 느린 편인데 악으로 깡으로 주임님을 따라 하다 보니 왼쪽 골반쪽에 통증이 생겼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갔던 병원에선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생긴 통증이니 꼭 쉬어야 한다는 진료 결과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짧은 3주였지만 어느 기관을 대표해서 선수로 나간다는 자부심과 그때 훈련 감독관이었던 000 주임님이 아니었다면 내 평생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운동했던 기회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언제 하루에 20km 넘게 뛰어보겠는가? 절대 그럴 일 없다. 다른 소방서는 몇 달 동안 최강소방관 경기 준비를 했다고 들었다. 아마 몇 달이었으면 난 끝까지 완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3주라서 가능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남들이 쉽게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봐서일까? 그 후로 난 나보다 체력이 더 뛰어난 후배들에게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00야, 너 운동 잘하니까 최강 소방관 한 번 나가봐, 아름다운 훈련 과정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마구 웃음)". 훈련 기간 내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땀내 나지만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난 전보다 조금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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