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하면 정말 잘할 거 같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두 달이 지났다. 아직 이 시골살이는 내게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매일 흥미로운일 투성이다. 그래도 집을 고치고 두 달을 살아봤기 때문에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은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집고치던 시간은 하루하루 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던지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1. 주방에 집중하고 다른 공간은 컴팩트하게 줄인 것
주방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고치기 전까지 정말 이 크기로 하는 게 맞냐며 엄마도 아빠도, 인테리어 사장님도 물었지만 잘 밀어붙였다. 현재 사용하면서 대만족한다. 여기로 이사온 후 배달음식은 아예 쳐다도 안 보고(쳐다보고 싶지만 배달해주는 곳이 없다...^^) 밥을 더 자주, 적극적으로 해먹게 되는데 그때 이 주방은 더 빛을 발한다. 넓은 덕분에 넓은 인덕션도 들여놓았고, 넓은 싱크볼도 넣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 한쪽에 의자도 놓아서 평소에는 식탁으로도 쓰고, 노트북 펼쳐 놓고 작업공간으로도 쓴다. 빨래도 갠다. 주방에서는 요리만 하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다.
2. 통창과 실링팬
계절의 변화를 집 안에서 하염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집 밖을 돌아다니는 동네고양이들도 보고, 새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도 실시간으로 본다. 꽃을 심어두니 나비가 날아다니고, 벌이 열심히 일한다. 집에서 커피 마시면서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을 가진 것 같은 기분이다. (세상을 가져보지 않아 정확히 기분은 잘 모르지만...좋다는 의미다) 물론 창문을 열심히 닦아야 하지만 괜찮다. 부모님은 모든 창을 픽스창으로 낸 걸 보고 환기를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셨다. 하지만 내겐 실링팬이 있지. 실링팬을 달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뒤창문만 열고 실링팬을 돌려도 환기가 잘 된다. 정말 생각보다 공기순환이 잘 되어서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한여름 활약을 기대하는 중!
3. 슬라이딩도어
일자형 구조에 벽을 세워 방을 만들고 화장실을 만든 터라 문이 열릴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다. 고민 없이 슬라이딩 도어를 선택해서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이건 우리 가족의 생활이 문을 닫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라 가능한 일 같기도 하다.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침실문은 아예 닫지 않고(고양이를 가둬둘 때만 사용한다), 화장실 역시 둘만 사용하니 잠금장치 없이 슬라이딩 도어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손님들은 화장실 문을 잠글 수 없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는 분들이 있었지만,,,손님은 가끔 오니까! 하지만 가족이 많다거나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은 슬라이딩 도어가 무거워서인지 혼자 여닫지를 못한다.
4. 넉넉한 콘센트
집 안에 콘센트가 총 22개 들어갔다. 외부 벽에 붙인 것까지 하면 23개. 그런데도 부족(?)하다. 치밀하게 계산해서 넣었는데도 말이다. 우리집은 전자기구 사용량이 많고, 어디에나 충전스테이션이 가동 중이다. 카메라 5대, 아이패드 3대, 휴대폰 2개, 애플워치 3개가 항상 충전을 기다리고 있으니(둘이 사는 집이 맞다....). 심지어 22개 콘센트는 주방 싱크 상판에 넣은 콘센트 2개는 뺀 숫자다. 콘센트는 많을 수록 좋다. 물론 뜬금없는 장소에 콘센트가 있으면 예쁘지 않을 수 있으나, 살다 보니 그 뜬금없는 장소에 무언가를 놓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기구가 많아 콘센트를 더 넣었어야 하나 싶지만, 내 성격에 안 그랬으면 코드를 계속 꼽아놓았을 거 같아 차라리 조금 부족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 출입문 크기
옛날에 지은 집이라 '현관' 개념이 없는 집이었다. 여기에 현관을 만들려니 공간도, 문도 작아질 수밖에. 처음에 문을 내었을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단열재, 마감재, 현관문 등등이 들어오니 내 생각보다 문이 훨씬 작아졌다. 그래서 아직도 커다란 짐을 들고 들어가지 못한다. 냉장고, 세탁기 같은 것도 뒷문으로 겨우 넣었다. 출입문 크기를 미리 생각하고 조금만 더 크게 내었으면 좀 더 편했을 텐데 생각한다. 하지만 한옥은 작은 문이 예쁘다...!
2. 조적욕조
욕조를 꼭 넣고 싶어서 일반 욕조와 조적욕조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조적욕조가 누수 위험, 청소 귀찮음 등등 많은 단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한번 경험해보기로 하고 조적욕조를 넣었다. 조적욕조 자체가 아쉬운 게 아니다. 조적 욕조 크기가 너무 아쉽다. 생각보다 욕실 공간이 넓어서 조적 욕조가 이리 크게 나올 줄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불찰. 물 받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또르르). 조금만 작았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조적욕조 하려는 분들은 꼭 크기를 잘 정해서(생각보다 작게) 만드시길. 그리고 청소는 빡세긴 하다. 물 때도 잘 낀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남편이 하면 된다(?)!
3. 히든도어
야심차게 세탁실과 드레스룸을 합친 공간에 히든도어를 넣었다. 벽면과 일체형이 되는 문이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넣었는데, 슬라이딩으로 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히든도어를 굳이 고집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 깔끔하고 예쁘긴 한데, 굳이..? 싶은 느낌. 차라리 벽면과 같은 색으로 해서 정말 히든도어였다면 괜찮았을 것 같다. 히든도어는 누구나 잘 보이는 공간에 문이 있는듯 없는듯 연출하는 게 가장 베스트일 것 같다! 그리고 시공을 잘하는 분들이 있어야 진짜 '히든도어'처럼 만들어진다.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틈새도 다 보이고 히든도어가 히든도어가 아니게 되니, 잘 고민하고 시공하는 것을 추천한다.
4. 외부 조명
집 외부 벽면에 조명을 주렁주렁 달았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건줄 알고 전선을 외부 벽으로 꺼내서 조명을 달았는데, 그닥 쓸 일이 많지 않다. 일단 조명을 켜는 순간 온동네 벌레들이 우리집 벽으로 모인다...그리고 그 조명을 켜고 밖에서 무언가 할 일이 많지 않다. 외벽 확인하거나 할 때 사용하겠다 싶었는데 휴대폰 손전등으로 충분하고, 외부 조명이 필요하면 차라리 캠핑용 조명을 켜두는 게 더 밝고 낫다. 결국 우리집 외부 조명은 촬영용이었는데 심지어 촬용할 때도 외벽 조명보다는 내부 불을 켜두는 게 통창에서 불이 은은히 밝혀져 더 예쁘다...! 일반 전원주택 같은 경우는 외벽 조명이 유용할 수 있겠으나, 우리집처럼 시골집에 창을 크게 낸 집에서는 그렇게 조명을 달지 않아도 괜찮았겠다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까지 기록한 건 집고친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집 고치면서 아쉬웠던 점은 살아보니 너무나 작고 미미해서 아무런 지장이 없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이미 보상받고 있으니.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이 집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매일 매일 행복할 수만 있겠는가. 매일 행복한 건 삶이 아니다. 그저 여기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꿈꾸고, 만들어가고, 찾아가면 된다. 난 그저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었을 뿐, 여기에서 누리고 살아가는 건 또 다른 일일 것이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 위한 귀촌프로젝트가 본격 시작되었다. 귀촌을 결심한 지 이제 7개월. 난 얼핏 보면 비슷해보이지만, 매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