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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haedal Feb 05. 2021

Day17  좋아하는 커피에서 조금은 멀어지며

보리차의 재발견


정말이지,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커피의 매력을 예찬하며 커피 주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소중한 일상의 한 부분인 오랜 친구인 커피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세세히 써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일상의 미학 초심을 잃지 않고 자리이타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과 지구에 이롭지 않은 부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포함해서.


매일 쓰던 일상의 미학, 지난주부터는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주말에는 쉬고 주중에만 쓰리라 마음먹고서 커피 주간을 경쾌하게 시작했던 것이 지난 월요일.


커피 주간

첫날,  Day 13 커피의 매력


둘째 날,  Day 14 거피와 도구를 즐겁게 써 나가던 중, 우연히 커피가 몸의 질서를 교란한다는 글을 읽고서, 커피를 매일 마시는 것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마음에 교란이 일기 시작하며 매우 산만한 하루를 보냈고, 이에 관한


셋째 날,  Day 15 복잡한 원두커피, 심플한 보리차 글을 쓰면서 다소 진정이 되었다.


넷째 날,  Day16 내겐 너무 과한 사은품을 쓰면서, 사은품으로 보내온 원두커피 드립 백 포장과 내가 주문한 원두커피 1kg 포장이 비닐류 중에서도 선별장에서 재활용되지 않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져 매립되어 침출수로 땅을 오염시키고 그 땅을 지나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거나 소각되어 대기를 발암물질로 오염시키는 'other'에 해당된다는 것을 포장 탐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다섯째 날, 오늘. 전날 오후 늦게 그리고 저녁에 커피를 마시는 바람에 잠이 더더욱 안 와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서 이런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커피 대신 보리차를 마셔보자.



커피 예찬으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사은품 사절에서 커피 줄이기, 커피 중단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생각해보니, 스무 살 이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알코올을 스무 살 넘어 마셨던 것처럼. 알코올과 커피 그리고 담배 등은 그러고 보니 기호(식)품이고 중독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호(식)품이라는 것은, 취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아니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일까? 중독성을 가진다. 담배의 경우 거대한 담배 회사에서는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위해 담배 맛을 연구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스무 살 이전에는 시험 전날 벼락치기 밤샘을 할 때도 커피와 같은 카페인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스무 살 이후 인스턴트커피, 다방 커피라 불리는 커피+설탕+크림, 자판기 커피 등을 마시기 시작했고, 커피 전문점의 유행과 함께 원두커피를 서서히 마시기 시작했다.


서른까지도 원두커피를 그렇게 즐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커피는 향이 51% 이상, 커피숍의 분위기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카페에서는 바로 옆에서 지속적으로 큰 소리로 누군가 대화를 나누지만 않으면 공부도 일도 가끔 더 잘되곤 했다. 코로나 사태로 줄어들긴 했어도 요즘 세대들에게선 완전히 자리 잡은 풍경.


커피는 내겐 맛보다는 공간이자 환경 분위기 향기 등이었다. 케이크나 버터, 느끼한 음식의 동반자 혹은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 소화제이자 각성제. 브런치에는 커피가 꼭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토스트+버터, 혹은 계란 프라이에 커피가 없으면 소화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의 동물성 기름이 주는 상쾌하지 못한 옅은 역함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렇다면, 버터와 계란 프라이를 먹지 않으면 커피가 없어도 되겠구나. 하여 어제는 글을 올리고 나서 커피 없는 브런치를 시도해보았다. 토스터에 구운 식빵에 양상추만 넣어서 보리차를 먹었다. 먹을 때는 괜찮았다. 흠... 역시, 버터가 문제였구나.


그런데, 다 먹고 나니 어디선가 옅은 역함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식빵을 만들면서 넣은 우유나 버터 계란 등에서 오는 것이려나. 할 수 없이 평소보다 더 적은 양의 원두커피를 내려 마셨다. 커피가 들어가니, 몸이 이 정도 양은 너무 적다고 항의를 한다. 또 할 수 없이 적은 양의 원두커피를 추가로 내려 마셨다. 영구 필터여서 다행. 종이 필터였다면 괜스레 두 장이나 소모될 뻔했다.


저녁은 밥을 먹었고, 평소와 달리 계란 프라이를 생략했다. 대신 콩조림 반찬으로 동물성 아닌 식물성 단백질을 보충했다. 한살림 무농약 상추는 시중의 상추보다 크기는 더 작고 조금 더 도톰하면서 고소한데 우리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가게 사장님의 수제 쌈장과 함께 하니 근사한 식사가 되었다. 그리고 보리차. 보리차는 이들과 훌륭한 콜라보를 이루었다. 커피는 없어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다. 물론 그전에 마시긴 했지만.


저녁 이후에 마시면 수면 장애도 일으키고, 식으면 매우 좋은 원두가 아니면 쓴 탕약같이 맛도 없고, 먼 이국에서 공정무역 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이곳까지 와서 재활용도 안 되는 썩지도 않는 other 봉투에 오는, 아무데서나 사기도 힘들고 괜찮은 로스팅 샵까지 찾아내야 하고 여러 도구들도 마련해야 하는 원두커피.


그 원두커피는, 내가 고소하지만 느끼한 버터나 우유 그리고 이 모두의 근원인 소고기, 맛있지만 어딘가 비린 계란 등을 먹지 않으면 안 마셔도 되는 거였다. 또한 버터와 우유와 계란과 설탕이 아낌없이 듬뿍 들어간 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안 마셔도 되는 거였다.


그랬구나.


커피는 집에 손님이 올 때나, 어쩌다 커피가 그리울 때 마시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실천은 또 별개지만, 보리차를 즐기면 커피는 들어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커피를 부르는 환경-소고기, 우유, 버터, 계란, 설탕-이들은 공통적으로 지구 오염에도 기여하고 있다 - 을 조성하지 않으면 커피는 굳이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우리가 먼 이국에서 무리하게 데려/모셔 온 것이니.


어제 깜짝 놀란, 어찌 된 영문인지, 넷째 날 커피 포장에 관한 조회수도 뭔가 커피 중독에서 깨어나라는 응원으로 작용한 것도 같다.


정말이지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이상으로 야심차게 시작했던 커피주간을 마칩니다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어쩌다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창대(?)했어요.


바쁘신 와중에도 소중한 시간 내어 글 읽어주신 님들,

오늘 불금.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주말 맞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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