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별일이 없으면 아무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임신 전의 나는 친구를 골라 만났다
“잘 가, 집에 가서 연락해!”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의 인사에, 나도 저런 적이 있었구나 하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도 친구들과 종일 붙어있으면서도 뭐 그리 할 말이 많았던지 문자로 자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문자 개수를 다 사용해서 문자 무제한인 언니 핸드폰을 빌려 친구와 문자를 나눌 정도로 정말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네이트온을 통해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카오톡이 생기고서는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밤새 대화를 나누곤 했다.
20대 중반이 되어 직장을 다니면서, 친구들과 하는 연락이 줄어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매일 직장동료와 웃고 떠들고, 친구를 일, 이주에 한번은 만나 유명한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녔다. 주말이면 남자친구를 만났고, 꾸준히 모임도 참석했다. 말 그대로 친구를 골라 만나는 느낌이었다. 심심할 때 휴대폰을 보면 연락할 친구나 만날 친구를 금방 찾아서 연락할 수 있었다.
그러던 나도 20대 후반이 되자 친구들과 하는 대화가 더욱 줄어들었다. 다음날 입을 옷부터, 먹을 음식, 썸남에게 답장할 내용까지 이야기 나누던 친구들과는 더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알아서도 옷을 챙겨 입고, 먹을 음식은 알아서 먹거나 만나서 정했으며, 썸남에게는 알아서 답장했다. 매일 나누던 대화는 점점 줄어들어 어느새 만날 약속을 정할 때만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평소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화가 없어졌다. 누군가의 이별이나 새로운 연애가 시작될 때 대화는 활발해졌다가 또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하나둘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대화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서로의 공감대는 줄어들고, 공유하는 시간과 이야기는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카오톡이 귀찮아졌다. 회사에서는 활발히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퇴근하는 순간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내 답장은 점점 느려졌고, 대화하는 친구가 줄어들었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결혼 전에는 친구와 연락을 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는데, 임신 후에는 친구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는 것에 외로워졌다. 남편과는 연애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온종일 카톡을 하고, 언니와도 거의 매일 카톡을 한다. 결혼 전과 변한 건 내가 고향을 떠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것밖에 없는데, 정말 사무치게 외로웠다. 여전히 출근하고, 직장동료와 웃으며 떠들었지만 외로움이 밀려왔다. 코로나로 친구들을 못 본 지 오래되어가서일까? 아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못해서일까?
30대가 되고, 아이를 출산한 지금은 친구 비수기다. 결혼하고 회사를 퇴사하고 나니 친구들과 연락이 줄었다. 별일 없이도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삶으로 바쁘고,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지만, 예전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다. 이제 별일이 없으면 아무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 내게 연락을 할까? 아이가 커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진 나는 그런 친구들의 연락이 버거울까? 일어나지 않은 미래가 궁금하다.
장례식장에 단 세 명의 친구만 와도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했다. 나는 서른 살에 친구가 많이 줄었다. 마흔에는, 또 환갑에는 몇 명의 친구가 남으련지. 친구들에게 내가 꼭 남기고 싶은 친구라면 좋겠다.
미혼인 친구와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질때
엄마가 된 친구와 이야기할 때면, 미혼인 친구와 대화할 때 느끼지 못하는 묘한 편함이 있다. 육아라는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은 상태이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이야기는 아기로 시작해서 아기로 끝나곤 했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 아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기혼인 친구와 편하다는 건, 달리 말하면 미혼인 친구와의 대화에서는 불편하다는 뜻도 된다. 어떤 미혼의 친구와는 여전히 편하게 이야기했지만, 어떤 친구에게서는 ‘할 말이 없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을 친구에게 아이 사진을 보내고 싶진 않았고, 나와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대화할 주제가 없었다. 만난 지 오래되어 서로의 관심사를 모르게 된 지 오래되었고, 소소한 가십거리를 이야기하기에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자들은 결혼 후 멀어진다는 소리가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구절을 발견했고,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공감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처한 상황이 결혼, 출산 등으로 달라지면 서로 공감이 안 되어서 이야기할 거리가 줄어드는 반면, 남자는 부동산, 주식 같은 이야기나 농담 같은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하고 깊은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않아서 오래도록 친구 관계가 유지된다.”
왜 내가 어떤 친구와는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는지 이해되었다. 서로의 상황이 너무 달라 공감이 안 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야기가 잘 통했던 기혼인 친구는 상황이 비슷해 할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미혼이어도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는 전에도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였다. 친구와 할 말이 줄어드는 게 내가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구나,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서가 아니구나. 그제야 비로소 안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