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a Oct 06. 2021

3. 출산 후 1년, 육아라는 섬에 불시착하다

그 섬에서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모든 규칙과 질서가 통하지 않았다.

 출산 전에 글을 쓸 때는 출산 후에는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웬걸, 출산 후에는 더한 외로움이 기다렸다. 더 정확하게는 '외롭지만 동시에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24시간 아이와 붙어있으니 아이와 떨어져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으면서도, 말이 안 통하는 아이 말고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소통하고 싶었다. 임신-출산이라는 특이한 상황 탓도,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원래 외로움을 많이 느꼈나 생각했는데, 결혼 전에는 별로 외로움을 못 느꼈다. 남자친구가 없던 시절에도, 친구와 약속이 없더라도 나는 할 일이 많아 바빴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이를 키우며, 또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잘 만나질 못하고, 심하면 일주일 내내 사람이라곤 남편만 만나는 환경 탓인지 나는 출산 후에도 외로웠다.

 코로나가 잠시 완화되었던 시기, 고맙게도 친구들이 놀러 와주었다. 결혼하며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사를 한 터라, 친구들은 모두 부산에 살고 있었고 운전을 못 하는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힘들었다. 친구들이 올 때면 나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아니 여우보다 더하게도 몇 시간 전이 아닌 며칠 전부터 설레고 준비했다.    

 아이가 생후 5개월이 되었을 즈음, 주말부부가 시작되었다. 겨우 '음마' 정도 하는 아이와 120시간, 5일, 평일 내내 단둘이서만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외로움이 내려앉을수록 우울함이 나를 좀먹어갔다.

 5개월의 주말부부 시절이 끝나고, 나는 다시 고향 부산으로 이사 왔다.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외로움은 덜해졌지만, 친구를 못 보는 외로움은 존재했다. 부끄럽지만, 사실 내가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면 친구들이 나를 만나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강한 존재감의 사람은 아니었는지,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겠지, 하며 코로나 탓을 해보았지만, 마음 깊이 외로움이 남았다.   

 

 육아를 시작하며 육아라는 섬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그 섬에서는 이제까지 내가 알던 모든 규칙과 질서가 통하지 않았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섬 밖의 사람들과는 더욱 멀어져 있었다. 슬프게도 섬 밖의 사람들은 섬 안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섬 안에서는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만나는 잠시만 의지가 될 뿐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나 혼자서 혼란함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어느 날은 과연 이 섬을 탈출할 수 있을까 막막해서 울고, 어느 날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체념했다. 그러다 문득 섬 밖을 보았을 때, 도달할 수 없는 그 낙원 같은 곳이 부러웠다. 그곳은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언제까지 마음이 빈 채로 살아가려는지 모르겠다. 지금 사는 곳에 정착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 친구들이 많이 생기면 그 마음이 채워질까. 아이가 말을 해서 의사소통이 되면 괜찮아질까.

 그래도 아이가 돌이 지난 지금, 확실히 예전보다 덜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돌이 되며 아이와 할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났고,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아이와 생활하는데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육아를 하며 변했다. 집에만 있길 좋아하던 내가 이제는 매일같이 산책하러 나가서 걷고 온다. 집에서 아이랑 둘만 있다 보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도 가물가물해진다.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천천히 또 바쁘게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더라도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안심이 된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 하나하나마다 많은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또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와 산책을 했다.    

 한가지 다짐하는 건 아이로 나의 외로움을 채우려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는 지금은 나를 가장 사랑하지만, 언젠가 친구를 더 좋아하는 나이가 될 것이고,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것이다. 그렇다고 내 외로움을 남편을 통해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남편과 나는 아주 가까운 사이이지만, 가까운 사이에도 거리는 필요하고 개인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외로움은 오롯이 나의 몫, 이제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 외로움을 없애고 싶다. 

이전 02화 2. 출산 6개월, 나는 출산 후 더 외로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