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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Oct 04. 2021

1. 결국, 임신 후 나는 외로워졌다.

언젠가 이 외로움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

 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쿵쾅

 아이의 첫 심장 소리를 들었던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직 형체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아이의 심장이 그 무엇보다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임신이 힘들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임신 기간이 힘들었던 사람들의 사례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임신 초반에는 유산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하고, 중기에는 괜찮아져서 과장을 보태 날아다닌다고 하고, 임신 후기에는 몸이 무거워 힘들다고들 했다. 걱정과 달리 나의 임신 기간은 순조로웠다. 많은 산모가 겪는다는 입덧도, 환도가 서는 것도, 임신 당뇨도, 임신 중 입원도 없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왔지만 참을만했다. 38주까지 근무를 했는데 주변의 많은 배려 속에서 수월한 임신기를 보냈다.

 하지만 나를 좀먹었던 것은 임신 전에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몸은 괜찮았지만, 마음이 힘겨웠다. 외로움이 점점 커진 탓이다. 임신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몸의 변화를 걱정해주었지만, 외로움에 대해 경고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고 피하고 감추려고 했다. 그럴수록 외로움은 더욱 커져갔다.   

 

 어느 날 일을 하다, 정말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외로움이 턱 끝까지 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며 이 감정을 덜어내려고 카카오톡을 켰고, 한참을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결국, 나도 임신 후에 외로워지고 말았다.    




 물론 나는 남편도 있고, 아기도 있고, 친언니도 둘이나 있다. 하지만 그날 느낀 외로움은 남편이나 언니들로는 충족되지 않는 외로움이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여자 친구끼리는 결혼 후 멀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말이 따분했고, 싫었다. 일부 사람들끼리 일어나는 일을 집단으로 묶어 보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을 이행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관심사를 친구들에게 잘 말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미혼인 친구가 물어보지 않으면 결혼 준비나 결혼생활,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남편과 언니와 해도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보니 어떤 친구에게는 7개월에 임신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아이의 성별을 모르는 친구도 있다. 내가 나서서 임신 사실과 성별을 알리기 민망하달까.

 물론 나는 임신이나 결혼 관련 이야기로 밤을 새울 수 있다.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고, 결혼생활 에피소드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저 떠벌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 좋은 감정은 나 혼자 기록하고, 나쁜 감정은 그대로 혼자서 흘러가게 두는 편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29살 초에 결혼해서 고향 부산을 떠나 남편이 있는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게 아니라 생각했는데, 주변 친구들 몇 명만 결혼했고 나머지는 결혼계획이 없는 걸 보면 일찍 결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1. 나의 고민과 맞닿아있는 친구가 없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가 없다. 결혼한 친구의 수가 적다 보니, 임신한 친구도 최근에야 생겼다. 그런데 결혼을 한 내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기점으로 퇴사를 하다 보니, 출산 후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와는 고민의 결이 달랐다. 오히려 친구들을 보면 아기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주변 사람의 영향을 잘 받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    


2. 지역 변경, 취업, 임신, 코로나19로 친구를 못 만난 지 오래되었다.

 임신 전에는 지역이 달라도 한 달에 한 번은 친구를 만났었는데, 취업과 임신, 코로나19 확산으로 친구를 못 본 지 정말 오래되었다. 외출도 잘못하고 친구도 못 만나니 더 외로워진 것 같다.    


3. 같은 지역에 친구가 한 명도 없기에 출산 후 더더욱 친구를 못 만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가 1시간 거리기 때문에, 운전을 못 하는 나는 정말 친구를 보기가 힘들다. 임신 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른 지역에 가기가 힘들었는데, 아이가 있으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4. 관심사를 나눌 친구가 없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임신, 아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다. 비슷하게 임신한 친구가 없고, 미혼인 친구와는 임신 이야기를 할 것이 없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주제와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내일 나는 또 외로워질지도 모르겠다. 이건 다 내 삶이 평화롭고 위기가 없는 탓일까. 언젠가 이 외로움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까. 세상은 정말 혼자 살아가는 것일까. 서른에도 친구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출산 후에는 아이와 함께하니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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