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그리고 공시성에 관하여

공시성 part 2 _ 제3화

by 박용근

공시성 part 2 _ 제3화


몰입 그리고 공시성에 관하여




[ 내가 경험한 몰입이란 ]

몰입(flow)이 중요하다는 것은 나만 강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면 대표적인 두 분을 찾을 수 있다. 헝가리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와 우리나라에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가 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보다 더 몰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도 이 분들의 이야기를 접한 시점이 이미 몰입을 한참 겪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공감을 했다. 그래서 나도 내가 경험한 몰입에 관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경험한 몰입은 한마디로 천재성을 깨우는 행위이다. 그리고 몰입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몰입이란 과정은 마치 양자 운동처럼 몰입(focus)과 몰입(flow)이 운동하 듯 작용한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관심 있는 지점이 생기면 그 지점에 몰입(focus)이 된다. 그 후 이 지점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몰입(flow)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몰입(focus)이라는 고정된 상태에서 몰입(flow)이라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운동을 만들면 점차 내 의식은 몰입(flow) 상태를 통해 관찰과 질문들을 던지고 이 관찰과 질문들이 점차 몰입(focus)이라는 대상에 깊이 들어 갈수록 의식 수준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하게 한다.


그래서 몰입(focus)과 몰입(flow)은 의식 수준에서 무의식 수준의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온 신경이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문제여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리 없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이 쌓일수록 그 능력이 개발되지 않을 리 없다.


이런 몰입의 상태를 이해하고 자연스러워지면 평소 일상에서도 쉽게 몰입하는 상태를 경험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소개팅에서 매력적인 이성을 만난다고 가정하면 그 매력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만약 잘못된 믿음,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게임, 하루에도 몇 갑을 피우는 담배, 사랑을 넘어 공포를 선사하는 스토킹 등 자기 또는 상대를 파괴시키는 지점이라면 스스로 해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해어 나올 수 있게 해주는 힘도 자문자답, 몰입, 재정의 등의 경험이다. 특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집중할 때는 몰입의 상태를 만드는 것은 필수이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의 매력에 자신의 마음이 강탈당하는 일은 줄어들고 사랑할 만한 존재를 스스로 찾아서 애정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도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처음 결혼할 때 보다 7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이 더 가깝고 더 행복하다. 결혼생활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몰입을 통해서 스스로가 가치를 발견하고 재정의하는 일은 자기 행복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 외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볼 때도 누구나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몰입은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몰입은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물이자 flow라고 표현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흔히 감성이란 인지 감각을 통해서 동화되거나 매력에 빠진다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상호작용에 의해서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몰입되는 경우는 많이 경험하지만 스스로 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몰입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몰입을 인지하고 도구로서 사용해야만 문제해결력이 좋아진다. 그리고 문제해결력은 곧 천재성을 나타낸다.

만약 내가 원하는 지점에 이 몰입의 상태를 가져갈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몰입의 상태를 상호작용을 넘어 스스로 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몰입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내 경험을 하나하나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내가 몰입을 처음 겪었을 때는 30살쯤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며 방송아카데미를 총괄 운영하던 시기였다. 그런 내가 사실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나는 심리적으로 무장해제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 다시 말해 심리적으로 실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흔히 바닥을 찍었다고 표현되는 상태였다. 이 상태가 실제 자기 목숨과 같다고 여겨지고 그만큼 포기할 수 없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첫 번째 몰입으로 “진입”의 단계에 들어간다.


두 번째) 나는 내가 겼었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자문도 구하고 도서관에 가서 나를 무너트린 그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지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이때 나는 내가 처한 환경에서 답을 찾기가 어려웠고 결국 찾지 못했다. 이때 내가 선택한 것은 그럼에도 찾고 싶었기에 평생 생각도 해보지도 않았던 내가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었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스스로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상태가 되면 몰입의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한다. 자신의 역량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경험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한다. 새로운 결정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행동을 만들고 이 생각과 행동이 결국에는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얻은 새로운 경험은 곧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더 큰 역량으로 키워지는 경험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이다.


이 경험 후에는 자신의 한계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경계인 것이다. 그 힘이 나는 문제해결력이자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생각이라는 공간에서 질문이란 도구를 통해 수많은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보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 시뮬레이션이 바로 몰입(flow)이다. 이 경험을 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스스로 몰입을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는 두 번째 단계 “경험”의 단계를 겪었다.


세 번째) 자신이 몰입을 할 때 어떤 상태에서 몰입을 잘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나의 경우는 몰입은 상대적이어서 몰입하면 할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대상에게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몰입의 상태가 크면 클수록 그에 상응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내가 가치가 있다고 명확하게 믿고 있다고 스스로 인지하면 그 순간 그 대상에 몰입(focus)이 된다. 그 후 그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나는 질문을 통해서 몰입(flow)을 만들어 낸다. 이 단계를 스스로가 인지하면서 그 순간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몰입의 힘을 스스로가 통제하고 사용할 줄 아는 세 번째 “사용”의 단계를 경험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몰입이란 단어도 양자 운동을 한다. 양자 운동은 서로 상대적인 두 개의 지점이 하나로 중첩되었을 때 운동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고정된 상태를 의미하는 몰입(focus)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의미의 몰입(flow)의 합이 있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두 단어의 의미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재정의 해 보면 몰입(focus)은 결과이고. 몰입(flow)은 과정이다. 과정은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가 쌓여 다시 과정을 만든다는 역설적이지만 순환하는 구조를 몰입이란 단어도 역시 역설적이지만 양자 운동적 의미 구조를 품고 있다.



[ 내가 경험한 공시성이란 ]

공시성을 표현하면 흔히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경험으로 쉽게 이해를 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공시성은 내 생각이 실제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가져다주는 충격적인 경험이다. 이 경험을 최대한 함축적으로 표현하면 두 가지로 나눠서 표현할 수 있다.


1) 생각했던 것이 현실에 반영되어 일어나는 경험,

2) 다른 존재가 서로 연결되는 경험


이 두 문장은 사실 하나의 공통된 의미가 있다. 바로 “연결”이라는 의미다. 사실 물리적으로는 실제 하지 않지만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해보면 공시성이란 영향을 받는 곳은 바로 정신이다. 그리고 공시성 경험은 단순히 겪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그 형태를 드러내게 하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그림에서 시작할 수 있고 글로 시작될 수도 있으며 기술이 발전하면 여러 다양한 기술로 표현될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만큼 내가 경험한 공시성은 강력한 현상이다.


내가 경험한 공시성은 소용돌이를 생각하면 구름으로 소용돌이를 보여주고, 나는 아내와 천생연분이라 생각하니 음력 생일이 같은 날이었다. 내가 정의한 양자 운동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자 내가 같은 의미의 음악이 갑자기 울려 퍼지고, 코로나19, 태풍 링링, 태극기, 이순신 장군. 내가 타고 다니는 차. 우리 부모님, 등등 단순히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을 넘어 공시성의 강도가 점차 강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내 정신에 점차 영향을 주었고 어느 순간에 공시성을 믿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더 급격하게 공시성 현상이 크게 늘어나다가 정점에 이르러서는 완벽하게 정신적인 세계와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겪었던 이 공시성의 정점은 내 의지는 단 1%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세상이 흘러가듯 나는 그저 흘러가는 존재로 여겨지고 내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했던 경험이었다. 이 정도의 경험은 실제 현실에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fantasy 같은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순간적으로 생각하길 현실에서 경험하는 fantasy라는 느낌 때문에 이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유지할 경우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는 평소 사용하던 자문자답이란 자기 객관화를 통해서 지금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내가 경험 안 이 공시성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 있다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그 결과물이다. 이렇게 공시성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이 드러낼 수 있는 상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현상들을 여러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해보고 정리한 결과 몇 가지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1)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거나 이별할 때 세상 모든 음악이

내 이야기 같을 때

2) 창업자가 간절히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생각 속에 있던

생각을 현실로 꺼낼 때

3) 예술가가 작품 활동에 대한 간절함 있고 그 간절함이 영감으로

드러났을 때

4) 연구원의 간절한 연구과제의 해답이 꿈속에서 모습을 드러내

그 결과로 세상을 바꿀 자연법칙을 발견했을 때


공시성은 이런 상황일 때 특히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대중적으로는 이성과의 사랑을 할 때 온통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표현과 들리는 음악이 자신의 상황을 노래하는 경험이다. 아이작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도 꿈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힌트를 나 해답을 얻었다고 하고 브리드리히 케쿨레는 벤젠 분자의 원자 배열 문제도 뱀이 나타나 그 문제의 해답을 주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에서 공시성을 재 정의해 보면 작게는 “공명현상”에서 크게는 ‘접속 현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사물을 대할 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좀 사물들은 저마다 크기, 질감, 용도가 다르지만 그 속에 담긴 우리가 선택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정보면에서는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는 것을 경함 한다. 이런 정보를 재정의 해 보면 ‘주파수, 파장, 파동’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주파수, 파장, 파동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시성’이다.


모양이 제각각인 수많은 물건들이 있지만 노련한 암살자들에게는 다 살인의 도구라는 공통분모로 소비되는 것과 같고 천재 음악가에게는 모든 물건들이 음악의 도구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보면 실물보다는 정보 측면이 더 다양한 접근과 관점 그리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정도가 되면 눈치가 빠른 사람은 바로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누구나 공시성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앞으로도 충분히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공시성은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공시성은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다만 내가 경험한 경험이 다른 정보에 묶여 공시성이란 정보와 연결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시성이란 이 단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재정의 해 보면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랑하면 공시성을 경험한다. 또 다른 단어로 재정의 해 보면 “가치”이다. “가치”라는 말은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 “가치”도 재정의하면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사용하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이 “가치”라는 이름의 “사랑”을 하면 공통되게 그 지점으로부터 “몰입”을 한다. 사랑하거나 가치가 있다고 여기면 우리는 누구나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몰입이란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결과가 바로 공시성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특정 분야에서 나타나면 “천재성”이라고 표현한다.


정리해보면 “사랑, 가치, 몰입, 중독. 천재. ”는 다른 단어이다. 하지만 의미를 생각해 보면 서로 연결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시성은 우리가 다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 같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이 신호를 직접 몸으로 겪으면 “공시성”을 경험했다고 표현할 수 도 있다.


결론을 지어보면 “사랑, 가치, 몰입, 중독. 천재”라는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면 충분히 공시성을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시성은 그게 무엇이든 상상이나 정보 측면에 있던 무언가가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다. 그 힘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 가치, 몰입, 중독. 천재”라는 상태이고 이 힘을 증폭시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단어의 힘은 “사실이다.” “확정되다.” “존재하다.”라는 의미로 재정의 할 수 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의미이고 “사실”이라는 의미는 “확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확정”되었다는 것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를 저마다의 믿음의 강도를 가지며 살고 있다. 믿음은 믿지 않으면 현실이 되지 않고 믿으면 현실이 된다.


스타트업 멘토로서 내가 하는 역할도 새롭게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자신들만의 신념을 의지에 담아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상상을 여러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 과정은 현장에서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공시성이란 현상이 가져다주는 힘은 상상 속에서 존재했던 정보 수준의 것이 정보라는 가치에 믿음이란 운동에너지가 부여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물리적으로 그 모습이 드러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공시성의 힘은 사랑이고 가치이며 천재성이고 몰입이다. 아무리 다르게 불러도 똑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결국 같은 인간이기에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