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비교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서 숙소를 예약하는 과정은 꽤나 지난하다. 특히 이곳저곳 뒤지고 또 뒤졌는데, 짤짤이(?) 수준의 가격 차이만 확인하고 더 이상 최저가를 발견할 수 없을 땐...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지지. 그럼에도 밥 한 끼 값, 아니 적어도 커피 한 잔 값이라도 아껴서 여행 실비에 보태고픈 마음에 휴대폰을 꼭 쥐고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호주는 숙박비가 높기로 유명한 동네. 짧지 않은 일정이니 숙소에 많은 돈이 쓰일 텐데 싶어, 최대한 비용을 낮춰 보려고 고군분투해 보았다.
6월: 1차 예약
퍼스 여행은 총 11박이 되어버렸다. 11박 중에 2박은 북부 투어라 투어 업체에서 알아서 하니, 나머지 9박만 내가 예약하면 된다. '동선의 최소화, 여정의 효율화'를 위해 미리 내 엄지손가락을 수없이 움직인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엄지를 많이 움직이는 만큼 내 발과 무릎은 조금이나마 덜 혹사를 당할테고, 돈도 좀 아낄테니까.
숙박할 동네를 먼저 찾을 수도, 숙박하기 좋은 숙소를 먼저 찾을 수도 있다. 이곳저곳 두루두루 후기가 좋은 숙소를 찾으면, 거기다 내가 원하는 조건 몇 가지만 만족한다면 더 찾지 않고 쉬이 예약하기도 한다. 아는 누군가로부터 실제 후기를 전해 들으면 신뢰도가 급상승해서 거침없이 예약하기도 하지만 사실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럼 끊임없이 숙박 후기를 찾아 헤맬 수밖에.
퍼스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후기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역설적으로그 덕에 금세 숙소 후보들이 추려졌다.
숙소탐색 노동의 결과,총 네 지역에서 숙박을 해 보기로 한다.
프리맨틀 2박, 로트네스트 2박, 머리스트리트 3박, 노스 브리지 2박 되시겠다.
다 나름의 조건과 이유가 있는 결정이다. 프리맨틀에서 숙박하며 여유 부려보고 싶은 데다 로트네스트 섬 입도에 유리하니 프리맨틀 2박, 로트네스트에서 쿼카와 유유자적하고 싶으니 섬에서 2박, 북부 투어 전에는 투어 모임 장소인 퍼스 역 근처에서 묵는 것이편리한데다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고 싶으니 머리 스트리트 3박, 투어 마치고 늦은 밤 빠른 귀가를 위해서 퍼스 역 바로 위 노스브리지 2박.
이렇게 숙소 위치를 계획하고 보니 딱 한 가지, '프리맨틀의 주말 마켓 구경'이라는 것만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동선을 고민해 봐도 그럴듯한 답은 안 나와서, 정말 보고 싶다면 다시 프리맨틀에 구경 나오기로 한다.
1. 프리맨틀: 퀘스트 프리맨틀
로트네스트 페리를 타는 B Shed와 거리가 멀지 않고 후기도 괜찮은 편이라 낙점.
2. 퍼스: 노보텔 머리 스트리트
노보텔은 퍼스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머리 스트리트에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트윈 침대를 찾으니 스탠더드 더블룸인데, 무려 더블침대가 두 개란다. 훌륭하다.
3. 노스브리지: 더블트리 바이 힐튼
투어를 다녀온 밤, 너무 먼 길을 걸어 귀가하는 일이 없게 다음 숙소는 노스브리지로 정했다. 파노라믹 뷰 트윈 룸이니 창문 밖 풍경도 제법 괜찮을 것 같다.
4. 로트네스트: 디스커버리 리조트
로트네스트 숙박지로는 무려 환불도 안 되는 텐트 호텔, 디스커버리를 선택했다. 좋게 말하면 자연친화적으로 글램핑을 하는 셈이고, 조금 비틀어 말하면 호텔 값은 다 주고 굳이 야외 생활하는 느낌이려나. 로트네스트는 애초에 호텔도 많지 않아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 쿼카가 놀러 다닌다니 기대가 된다.
일단 이렇게 숙소는 확정이다. 총 11박의 숙소 예약 완료. 이후에도 최저가 중에서도 최저가를 찾겠다고 시간이 날 때면 예약 사이트를 옮겨 다니며 더 낮은 가격으로 예약을 갱신하기도 했다. 그래도 비싸, 비싸.
7월: 아코르 멤버십의 습격
7월. 예정에 없던 '아코르 멤버십'에 가입했다. 노보텔을 좀 더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궁리하던 차, 아코르 보야저에다가 우리 All 카드까지 가입하면서 플래티넘 등급이 되었다. 그 덕에 숙박권과 포인트가 생기면서 '노보텔 머리스트리트'의 기존예약을 취소하고 아코르 앱에서 재예약했다. 엄청나게 금액 차이가 큰 건 아니지만, 기본 룸만 예약해도 조식이나 룸 업그레이드같은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만족스럽게 예약을 변경했다.
마지막 숙박지였던 노스브리지 숙소도 취소하고, 노보텔 머리 스트리트에 올인하기로 했다. 결국 북부 투어 전후로 총 5박을 하게 된 셈이다. 첫 숙박 때 숙소가 익숙해지면, 투어 이후의 두 번째 숙박은 좀 더 편해지겠거니. 머리 스트리트에서의 머묾이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10월 30일 새벽: 충격적 오류 발견
e-sim을 사려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호주 Optus 통신사에서 무료로 데이터를 7일간 제공한대서, 무료 기간을 제외하고 유료 결제해야 할 나머지 일수를 손가락 접어 가며 세던 중이었다. 어, 뭔가 날짜가 이상한데? 호주에 머무는 일자들 중 7일을 빼면 5일 치만 유료 결제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달력을 다시 헤아려 보니 5일이 아니다, 4일이다?!
애초에 숙소 예약할 때 날짜 계산에 넣었던 11월 5일은 퍼스가 아니라 인천에서 출발하는 날. 5일 오후 11시 15분에 인천에서 출발해서 싱가포르 거쳐 6일 정오쯤에 퍼스에 들어가는데, 나는 5일부터 숙소를 잡아뒀다. 어떻게 11월 5일에 퍼스에서 잘 생각을 했다니? 무슨 정신으로 예약을 한 거람. 그러니까처음부터, 총 숙박일수는 11박이 아니라 10박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첫 숙소인 'Quest Fremantle'에서
We are just emailing to find out your estimated time of arrival on 2024-11-05?
라고묻기도 했는데 이 문장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도 했다지. 내가 뭐에 홀렸던 걸까? 이 사실을 알고는 남편에게 "어떡해, 내가 실수를 했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남편은 누가 봐도 사고를 친 얼굴인 나를 보며 "안 돼~ 말하지 마!" 한다. 남편, 미안한데 말 안 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아.
마음을 가다듬고 실수를 수습해 본다. 기존 숙소인 퀘스트 프리맨틀은 이미 만실 상태로 예약할 수가 없고, 내가 점유한 방을 취소한다고 다시 그 방을 잡으리란 보장은 없다. 호텔이나 예약 사이트에 연락해서 예약을 변경해 달라고 해 본다든가 하는 적극적인 해결 방안은 일찌감치 포기. 결국 새 숙소를 탐색해 본다. 네이버 호텔, 인터파크, 아고다 등등을 뒤져서는 날짜를 수 번 확인하고 다시 다른 호텔로 "11월 6일" 1박을 예약했다.
새 호텔은 이름도 어려운 '에스플라네이드 호텔 프리맨틀 바이 라이지스'. 이름이 어려워서 찾아보니 'esplanade'는 바닷가나 강가의 산책로나 둔치를 뜻한다고 한다. 호텔 건너편에는 실제로 에스플라네이드 공원도 있다. 오히려 바다를 좀 더 즐길만한 위치로 옮기게 된 것 같은데, B shed에서는 200여 미터 멀어진 것 같다. 이렇게 급히 찾아낸 호텔이지만 숙소가 괜찮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11월 6일부터 1박, 이번에는 확실하다. 첫 예약처럼 저렴하게 예약하진 못했어도, 몇 만 원 차이 안 나는 정도로 실수를 수습한 게 다행이다 싶다. 무료 취소 기간 전에 알아챈 것도 감사하잖아?! 덤으로 우리카드 실적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웬걸 우리카드로 결제하며 실적이 냅다 생겨 버린 것도 감사하게 여겨 본다.
10월 30일 오후: 최저가 갈아타기
새벽녘의 사건이 일단락되고, 잘 자고 일어나 평온을 되찾았다.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는데 어제 찾다 만 아고다 페이지가 열려 있다.
- 응? 새벽보다 삼만 원이 싸잖아. - 조식 불포함이었는데, 조식 넣어야 새벽 때 가격이네.
결국 '첫예약 > 두 번째 예약 > 첫 예약 취소 > 세 번째 재예약 > 두 번째 예약 취소'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완전하게 예약을 마쳤다. 메일함에는 예약, 취소 메일이 착착 쌓였다. 예약번호 뒷자리를 유심히 보고 입으로 읊으며 내가 제대로 취소하고, 제대로 재예약했는지 살핀다.
아고다나 호텔이나 매번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는 고객이 좋을 리 없겠다만, 아고다가 가격 장난을 계속 치는 걸 어쩐담. 난 그저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시민인 것을. 탓하려거든 아고다를 탓하라!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