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가자고 생각하게 된 건. 내가 쿼카가 그려진 맨투맨을 사 입은 이후, 남편이 '쿼카의 귀여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이미 예정된 일은 아니었을까? 싱긋 웃는 얼굴에 볼 빵빵한 이 생명체가 너무 귀여워진 나머지, 에버랜드에 가서는 쿼카 머리띠와 팔찌를 사 오기도 했었지만 사진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 느끼기도 했었더랬다.
휴직 기간 중에 어떤 여행을 또 해 볼까 생각했던 차에 문득 쿼카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사실 많이들 가고, 그만큼 둘러볼 구경거리 많은 유럽에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던 때도 있었다. 허나 곰곰이 옛 동유럽 여행을 떠올려 보니... 쿼카를 보는 게 더 행복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2017년, 우리는 빈과 프라하, 부다페스트에서 총 15박을 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게 보였던 건물들도, 화려하고 웅장해 멋지게 느껴지던 유적들도 시간이 조금 지나니 신기함이 사라졌다. 적당히 남들 다 가는 명소들을 찾아가서 적당히 감명받고 돌아오고... 이걸 반복하면서 지내는 느낌이 반복되었다. 나중에는 다 비슷해 보이고, 뭐가 진짜 좋은지도 모르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고, 숙소에 하루 종일 박혀 있었던 날도 있었다. 유럽에 가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거기서 뭘 꼭 해야겠다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의미 있고, 즐겁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위해서는 그 나름의 목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아직 동유럽에 갔다 온 이후에도 딱히 유럽에서의 목표는 딱히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쿼카는 아주 좋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목표가 아닌가! 쿼카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이라 이름 붙여진 이 친구를 직접 본다면 좋지 않을까. 나도 덩달아 싱긋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여행을 가야 하는 장소는 한 군데뿐이다.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그중에서도 시드니나 멜버른 같이 유명한 곳이 아니다.
서호주다. 퍼스! P.E.R.T.H.
왜 퍼스냐 하면...
쿼카는 신기하게도 서호주에, 그것도 로트네스트라는 작은 섬에만 살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있나! 마치 희귀한 한정판 같은 생물이라니. 실물 영접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부터 최소 13시간 넘게 날아가야 한다니.
찾아보니 퍼스는 볼 것이 많지 않은 작은 동네라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일단 우리에게는 쿼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럼 퍼스에 간 김에 무얼 더 해 보면 좋을까, 조금 더 찾아보았다.
1순위는 당연히 쿼카를 보러 로트네스트 섬에 들어가는 것. 섬에서 숙박하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다. 밤에는 별도 잘 보인다고 하고, 예쁜 해변도 있다고 하니. 밤엔 별이랑 쿼카 보고 낮엔 바다에 발을 담그거나 물놀이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순위는 사막과 핑크 호수와 피나클스 별 투어를 가는 것. 퍼스 주변 지역을 돌아보는 투어는 하루 짜리도 있고 사흘 짜리도 있는데, 이곳저곳 대륙의 신비(?)를 탐험하기에는 3일짜리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세 번째로는 프리맨틀이라는 항구 지역에 가서 바닷가와 석양을 바라보며 맛있는 걸 먹는 정도. 너무 소박한가? 그치만 상상만 해도 그저 행복한걸.
언제 가면 좋을까
그럼 퍼스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쿼카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쿼카가 있는 로트네스트 섬에 들어가는 배편과 그 섬에서의 숙소를 구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다. 당일 치기로는 아까울 터라, 두 밤 정도를 섬에서 보내면 좋겠단 생각. 로트네스트에는 원래 숙소도 많지 않고,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되는 편이라 시기를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삼 일짜리 북부 투어. 마이리얼트립이나 줌줌투어 같은 여행 업체를 뒤져 보니, 화요일에 출발하는 투어가 맘에 꼭 든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출발하는 투어라, 여행 기간 중 화, 수, 목요일이 포함되어야 하겠구나.
이렇게 쿼카와 투어만으로도 최소 4박은 해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4박의 고정 일정에, 프리맨틀과 퍼스 구경을 여유롭게 할 시간들까지 하면... 일주일이면 되려나 싶다. 투어 다녀와서 비행기를 바로 타기는 체력적 부담이 될 테니 몇 박 더?
이번 여행 준비의 특이점이랄까. 섬에 들어가는 배편이나 투어 일정을 고려했을 때, 항공권을 먼저 구하고 나서 예약이 불가능해지면 곤란해질 듯하다. 막상 항공편 잡았는데 배가 없거나 섬에 숙소가 없으면 어째. 항공편과 배편과 투어, 섬 숙소 예약을 거의 동시에 진행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네. 아무것도 놓치지 않겠다! 조바심이 생긴다.
그럼 언제 가면 좋을까.
남반구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호주. 퍼스가 따뜻해지고 바닷가에서 발을 담글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11월, 12월 정도가 좋지 않을까. 최근 여행기들을 보면 10월은 좀 춥다는 얘기들이 많이 보인다. 호주 대륙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도시라서인가, 봄 기온이 금방 확 오르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12월은 무척 덥다니. 대체 호주는 한 달 사이 무슨 일이일어나는 것이람.
개인적으로는 시어머니 생신이 있는 10월 말, 시아버지 생신이 있는 11월 말 그 사이라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그즈음으로 로트네스트 섬 숙소를 먼저 찾아봤다. 몇 개 없는 숙소들 중에서 그나마 예약 가능한 숙소는 '디스커버리'뿐인 것 같다.
숙박 사이트마다 가지고 있는 숙소 물량이 달라서, 아고다는 방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익스피디아도 그다지 물량이 많진 않아 보인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니까. 곧 예약을 해야 할 것 같아 배편도 가능한지 찾아봤는데, 배도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언제나 그렇듯 여유가 없는 건 돈일 뿐.
일단 예약 전에 알아둘 최소한의 정보는 얻은 것 같으니, 며칠만 더 고민해서 일정을 정리한 다음에 차근차근, 그러나 순식간에 동시에 항공권과 배편과 섬 숙소를 먼저 예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