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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넓고 바다는 더 넓고

칼바리에서 퍼스까지

by 보듬 Mar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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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부터 신나게 울어대는 새 갈라 덕에 잠에 못 들다가 살풋 잠들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12시 반쯤부터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방 안까지 가득 채웠다. 누수가 있나, 이 밤중에 누가 물을 쏟아붓나, 온갖 상상을 하며 불안감이 커져서 잠에 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깨고 보니 5시 반쯤.

불 켜겠다고 침대 옆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려고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상반신을 들어 올리다가 침대가 반대로 쭉 밀리는 바람에 꽈당 침대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침대는 저어만치 밀려가 있고, 중력에 힘껏 이끌린 나는 땅바닥에 쿵. 하루의 시작을 엉덩방아와 함께라니. 아픈 엉덩이를 문질러가며 꽤나 억울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가이드님이 챙겨주신 닭죽을 아침으로 든든히 먹고 떠날 채비를 했다. 우리가 각자의 짐을 챙기는 사이, 가이드님은 아침 식사를 만들어 차리고 정리하고, 방마다 쓰레기 챙기고, 손님들 챙기느라 분주했다. 아침부터 땀 흘리며 종종거리는 가이드님을 보니 괜히 동병상련 같고 그렇더라. 인솔자의 일과란 정말 녹록지 않지. 자연스레 몇 년 전까지 수학여행 인솔해서 밤잠 못 자고, 애들 챙기느라 나는 뒷전으로 미뤄놨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오는 길에 머물렀던 숙소를 돌아다보며 생각한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나 있을까? 퍼스까지도 근 하루, 퍼스에서도 여기까지 쉬지 않고 온대도 한 나절. 칼바리의 너른 땅과 바다가 그리워질 날도 있을 텐데.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고 새들의 소리로 가득 채워지던 칼바리의 오후. 잔잔하게나마 들고나는 파도가 없었다면 그저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졌을 이곳. 다시 오겠다는 기약은 당장 하지 못해도, 인생 모를 일이니까.


가이드님은 호주 이민 10년 차로, 부모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응원하실 거라 믿으며 이민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좋은 것을 누릴 때마다 느꼈던 죄책감이 떠올랐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나만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늘 되뇌는 말은 "다음엔 꼭 부모님 모시고 와야지!" 같은 다짐이었다. 가이드님의 말을 들은 남편은 "우리 부모님들도 우리가 좋은 걸 좋아하실 거야"라며 공감했다. 어쩌면 합리화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앞으로의 마주할 여행을 위한 이른 위로일 수도 있고. 여러 생각이 스쳤다.


칼바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바다를 마주하는 시간. 아일랜드락과 내추럴 브리지를 둘러보며 산책을 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고 파도가 푸르라니 좋았다. 절벽 근방은 하얀 포말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 탄산음료의 거품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속이 다 시원해졌다. 오랜 시절 융기하고 침식되며 다듬어진 절벽들은 제주의 수월봉도 떠올리게 했다.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 일행 하나가 말했다.

- 호주는 땅이 넓은 줄 알았는데 바다도 넓네.

땅보다도 더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의 존재는 정말 먼지 같게 느껴졌다.


칼바리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퍼스까지 자동차로 길게 이동하는 여정. 끝없이 펼쳐진 평야 사이를 달리는, 가이드님의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돌고 도는 차 안에서 잠에 살짝 들었다 깨기도 하고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긴 여정 끝에 핑크 호수에 당도했다. 분명 호수라고 했건만 바닥은 소금 덩어리들이 가득했다. 밟을 때마다 소금이 바스락바스락거렸다. 호수 안 미생물이 붉은빛을 발현한다고 했다. 자줏빛 물이 신기했다. 바다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큰 호수라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부촌이라는 어느 이름 모를 동네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요한 바닷가가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운치 있는 시간이었다. 단지 생각보다 맛이 대단치 않은 피자가 조금 아쉬웠을 뿐이었다. 이제 양식은 그만 먹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싶어지는 기분도 들고.



또 한동안 길을 가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

차에서 내려 찌뿌둥한 몸을 풀겠다고 다리도 번쩍 들어 올리고 옆구리도 늘려가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곤 카페에 들어서려는데 바깥 테이블에서 맥주를 한잔 하시던 할아버지가 우릴 바라보며 껄껄 웃으신다.


 - 유니드 모어 엑서사이즈!


대꾸는 뭐라 못하고 가볍게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나에게는 왜 순발력도 재치도 부족한 것인가. 가벼운 유머에 곁들일 답변을 못하니 아쉬움이 생겨났다. 예컨대 "윌 유 조인 어스?"라든가, "쿠쥬 티치 어스?" 같은 가벼운 응대 말이다. 대화가 다 끝나고야 할 만한 답변이 생각이 나는 건 나뿐인가. 바닷바람 맞으며 커피를 호로록거리며 아쉬운 마음을 남편에게 토로했다.


퍼스에 가기 전 마지막 경유지, 피나클스에 도착했다. NASA에서 화성과 유사한 지형으로 뽑았다는 곳. 가이드님은 외계인이 만들어 낸 곳이라는 설을 믿는다고 했다. 정말 바람이 돌의 일부분만 침식시켰다고 보기엔 돌들의 모양이 제각기인데다, 모래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신기해 외계인 설도 나올 법하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바위 사이를 다니며 사진을 찍으며 가 본 적 없는 화성을 떠올렸다. 모래밭에 돌뿐이라면, 역시 사람이 살긴 어렵겠지.


밤 8시가 넘어서야 퍼스 역에 도착했다. 퍼스 역 앞에 차가 서고, 함께 오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히 가시라, 좋은 여행 되시라, 안전히 귀국하시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인연들과 기약 없는 인사를 나눴다. 여행을 힘들지 않게 해 주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박 삼일을 함께 다니면서도 누구도 이름을, 소속을, 사는 지역을 구태여 밝히지 않았다. 통성명도 없이 가이드 한 명을 가운데 놓고 사람들이 연결되고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익명으로 며칠씩 같은 사람을 보는 게 평소 살던 방식이 아니다 보니 그리 외향적이지도 않은 나조차도 자꾸 통성명과 교류에의 욕구를 느끼고 꿀꺽 참아내는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 결국에는 옆방 신혼부부에게 망고나 사다가 잘라주며 결혼을 축하한다고 인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익명 생활이 그리 낯설더니 일상을 떠나 여행을 왔으니 나를 정의하는 (동시에 옭아매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난 생활을 하는 기분도 느껴졌다. 그리고 익명인 사람들 사이에도 '좋은 여행이 되게 한다' 정도의 공감대는 있던 모양이라, 서로에게 피로를 주거나 여행을 어렵게 만드는 일도 없던 것도 좋았다. 어쩌면 인류애 같은 포괄적 관심과 애정으로 원만하게 지내고 있는가도 싶고. 멋진 배경으로 사진 찍어주기,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서로 웃어주기 같은 일들은 종종 일어났다. 나는 이런 관계가 아쉬웠다가 좋았다가 했다.


그러고는 곧 슈퍼에 가다가 한 팀을 다시 만나 햇반을 나눔 받고 마음이 뜨끈해지는 경험을 했고, 또 기약 없는 안녕을 고했다. 여행길에 우연히 다시 만나는 것도 좋겠다고, 다시 만나면 조금 더 나를 오픈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묵었던 호텔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숙소가 편안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졌다.

 

칼바리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이곳저곳 경유하며 퍼스까지 열두 시간이 걸렸다. 정말 오가는 여정이 결코 쉽지 않았고, 몸은 여기저기 뻐근하니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이박 삼일의 투어가 불러올 여러 불편들에 꺼려졌던 마음을 이겨내고, 칼바리까지 멀리 다녀온 것은 우리 나름의 도전이었다. 직접 세계 탐험 프로그램에서나 볼 법한 풍광들을 누리고 자연의 위대함에 감명받는 시간인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작디작은가 싶어 삶을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좋은 시간 끝에, 우리는 '신체적 피로 회복'이라는 중대한 과제 앞에 놓였다. 이제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며 퍼스에서의 여정을 곧 마무리하기로 다짐. 컵라면을 끓여, 나눔 받은 햇반을 말아 먹으며 이박 삼일의 여운을 떠올리며 긴 하루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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