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꿈에 별똥별을
보면서 생각했다.
별은 아내를 주고
똥은 내가 가져야지.
그래도 별이 하나 남네.
- 편성준, '별똥별'
눈앞에 별 두 개와 똥 하나가 있다면 별은 나에게 주고 똥은 자기가 덥석 집어갈 사람. 별 하나 남으니까 가지라고 해도 남는 별까지 기꺼이 나에게 건넬 사람. 자기는 똥으로도 충분하다고, 자기는 똥이 더 좋다고 할 사람. 내가 아는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한사코 사양해도 기필코 내 손에 별을 쥐어주는 남편 덕분에 내 안의 빛은 조금씩 더 밝아지고 더 선명해진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에서
'이 사람의 순수한 눈빛과 웃음을 지켜주고 싶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나의 첫 마음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흔들리면서도 동시에 투명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이 내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됐다. 남편 또한 빛나는 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각자가 자기 빛으로 빛나길, 그리하여 서로에게 빛을 비추어 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그와 결혼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마음이 헌신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다. 내가 첫 번째로 관심 있는 건 나의 삶이다. 하지만 나를 사랑한다고 하여 남을 사랑할 마음이 부족해지는 건 아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나의 존재감을 지우고 희생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를 꾸준한 마음으로 사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나를 바로 세웠다. 나를 살리는 건 그를 살리는 것과 같고, 그를 살리는 게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 그는 내 삶의 일부이자 한편으로는 전부이니까.
그가 나의 세포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얼기설기 얽혀있어 깔끔하게 똑 떼어 분리할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때, 나를 초월한 더 큰 사랑을 느낀다. 그와 함께 하며 사랑 수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행하며 관찰해 보니 사랑과 감사는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들을 때마다 기분 좋다.
사랑과 감사의 표현은 처음에는 의무감에 시작할지라도 결국에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사랑은 아낄 필요가 없다. 사랑은 아무리 흘려보내도 마르지 않고 끝없이 샘솟는다.
나로 인해 상대가 고마워하고 사랑을 느끼는 그 순간 자체가 나에게도 기쁨이다.
사랑과 감사의 에너지는 복리로 불어나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단, 시간이 걸린다.
<내가 사랑이라 부르는 순간들>에 쓴 에피소드는 내가 찾은 사랑의 모습일 뿐이다. 사랑의 정석도 아니요, 정답도 아니다. 삶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듯 사랑의 모습도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보다 가족을 위해 묵묵하게 일하는 모습이 사랑일 수 있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는 일반적인 조건을 기준 삼아 배우자를 평가한다면 온전히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에 딱 들어맞는 공식 같은 건 없지만, 나에게 어떤 사랑이 필요한 지 미리 알면 분명 유리하다. 내가 원하는 사랑과 상대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이 다를 때 혼란이 생긴다. 나를 모르고 상대를 모르면 백전백패다.
물론 나도 자주 패한다. 브런치북을 연재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러 번 다퉜다. 무슨 이유로 다퉜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정이 뚝 떨어져서 진짜 연재를 그만두고 싶은 날도 있었다. '나 지금 자기 최면 걸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사실이 맞아? 현실은 똥 같은데.'
그럼에도 글 쓰는 게 재밌어서 멈출 수 없었다. 알고 보면 글에 대한 사랑이 이 브런치북을 살렸다. '혹시 나중에 이혼하고 싶어질 때 내가 쓴 글을 보면 마음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글을 썼다. 역시 남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미래의 나를 염려하는 마음 덕분에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브런치북 이제 마무리할 거야."
"아 왜~~~"
연재가 끝나는 걸 가장 아쉬워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책도 잘 안 읽는 사람이 브런치북은 꾸준히 챙겨 읽었다. 자기 얘기라서 너무 재밌다며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게 나에게도 기쁨이었다. 글 쓰고 그림 그리며 무엇보다 내가 가장 즐거웠다. 처음에는 포스터나 엽서로 만들만한 그림을 글에 곁들이려고 의도했으나 그림도 점점 코믹이 되었다. 우리의 장르는 역시 로맨스가 아니라 시트콤이다. 시트콤 같은 인생, 너무 좋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글과 그림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