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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Oct 22. 2023

일곱째 딸에게

나의 열두째 막내딸..

나의 열두째이면서 막내딸아.


1966년 9월, 45살 나이로 너를 낳았지. 너는 위의 언니 오빠들과는 다르게 일곱 달 만에 세상에 태어났다. 고향집 안방에서 너를 낳고 나는 네가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했지. 그래서 이제 막 태어난 너를 이불에 싸서 안방 윗목 책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너는 너를 감싼 이불속에 '나 아직 살아있다'라고 말을 하는 듯 신호를 보냈지.


나는 너를 책상 밑에서 꺼내어 이불을 헤치고 너를 살펴보았다. 너는 먹을 것을 달라는 듯 입을 오물거리더구나. 내가 새끼손가락을 네 입에 대었더니 너는 내 손가락을 빨기 시작하더구나. 그렇게 너는 세상에 살아남았다.


지금 같으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할 미숙아로 세상에 태어난 내 막내딸아. 너는 자라면서 몸은 비록 약했지만 머리도 좋고 영특해서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구나. 하지만 조금 일찍 세상에 온 탓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또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확연하게 느낄 만큼 체력이 떨어져서 가끔 정신을 잃기도 했지.


어린 시절 너는 앞 뒤 머리가 짱구처럼 튀어나와서 막내오빠와 언니들은 '앞 뒤 꼭지 삼천리, 왔다 갔다 육천 리. 삥 돌아 구천리'하면서 놀리기도 했지.


너는 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반장은 도맡아서 했지. 그래서 담임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도 많이 받았지. 너는 성격도 좋아서 공부를 잘하거나 못해도 친구였고, 집이 가난하고 부자여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친구가 되어 주었지. 그런 너의 좋은 인성이 너의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것을 보면서 부모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옳은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았단다.


네가 고향의 중학교 3학년일 때 너는 안양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갔지. 전학을 간 중학교로 너의 친구들 많은 편지를 보냈던 까닭에 교무실의 선생님들이 놀랐다고 하. 너는 안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6년도에 연세대학교에 입학을 했지.


대학교에 입학을 한 너는 언니 오빠들의 도움으로 대학교를 다닌다는 생각에 용돈은 스스로 마련하려고 노력했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고. 아르바이트로 학생들 과외지도하고. 그러면서도 풍물놀이와 산악회 등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국항공사에 취직을 해서 야무지게 네 앞길을 잘 찾아갔지.


너는 1995년 봄에 친구 소개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지. 처음에 아들을 낳고 밑으로 딸 둘을 낳아서 3남매를 두었지. 결혼을 해서도 근무하던 외국항공사는 셋째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다녔지. 3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서 한동안 전업주부로 보내던 너는 2007년 2월에 마포에 영어학원을 개원했지. 너는 영어학원 원장, 바로 위 여섯째 언니는 상담실장으로 영어학원을 3년 동안 운영하던 너는 네게 주어진 시간을 잠시 허투루 보내지 않았지.


너의 3남매는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루는 예능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공부도 잘해서 너의 좋은 유전자를 다 물려받은 듯하더구나.


몇 년 전에는 공인중개사 시험 접수 마감일에 원서를 접수하고  1개월 동안 시험공부를 해서 공인중개사 1차 시험에 합격을 했지. 다음 해에 짧은 기간 집중해서 공부를 하더니 공인중개사 2차 시험도 거뜬하게 합격을 했지.


지금은 마포에 자그마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개업하여 하루하루를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는 2013년 3월, 10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2012년 12월. 수원의 요양원에 입원했던 내가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후 산서의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지. 그때 너와 셋째 언니는 서울에 사는 너희들과 가까운 곳에 머물지 않고 굳이 먼 곳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했지.


그때 나는 너희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들에게 부탁해서 나의 바람대로 산서집으로 돌아단다. 그런데 너와 셋째 언니는 내 고집만 주장한다고 요양원에서 나를 떠나 보낸 후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지. 그런 까닭에 나의 장례식장에서 네가 '그래도 엄마를 만나러 왔어야 했다'라고 후회의 눈물을 흘린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후로도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을 몇 번이나 후회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디 사람이 한 치 앞을 정확하게 알 수 있더냐.

다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될 수 있으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선택을 하거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 선택을 했다면 시간이 지나서 후회를 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큰 아쉬움이 없지 않겠느냐.


너는 어렸을 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너를 소개하면서 "야는 일곱 달 만에 태어났다."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싫어했지.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세상에 7개월 만에 태어난 것은 너의 탓이 아니지 않으냐? 그것은 누구 탓도 아니다. 그럴 수 있지.. 하고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의 삶이 더 여유롭고, 편안해질 거야. 행복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네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단다.


열두째야. 엄마는 지금 아주 편안하단다. 너의 생각대로 둘째 언니와 더불어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서 여행을 다니기도 한단다. 그러니 엄마 걱정은 더 이상 하지 말거라.


너의 보석처럼 반짝이는 세 아이들과 좀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도록 해라. 너의 아이들의 영원히 너의 품 안에 머물지는 않는단다. 이제 곧 너의 아이들이 각의 삶을 찾아서 제 갈길을 가지 않겠느냐?


너와 언니 오빠들이 내 품을 떠나서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것처럼 말이다.


나의 열두째.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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