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딸에게
내가 더 깊은 관심으로 보듬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 집의 아홉째, 나의 다섯째 딸에게.
1959년 38살 나이에 너를 낳고서 나는 네가 반드시 막내가 될 것이라는 다짐으로 '구필(九必)이라고 불렀지. 그러나 네 밑으로도 세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지. 그 동생이 태어나면서 너는 외갓집에서 외할머니와 생활하면서 그곳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지.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오수의 집으로 온 너는 야무지고 욕심도 많아서 공부도 잘했지.
외갓집에서 외할머니와 생활하던 때, 외할머니는 몇 번이고 나를 찾아와서 더 이상 너를 감당할 수 없다고 데리고 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당장 너를 데려올 수 없어서 외할머니를 설득했었다. 그렇게 외갓집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게 했지.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네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이 많았다. 외할머니께서 네가 요구하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외할머니와 다투기를 망설이지 않았지. 어린 시절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할머니(시어머니)를 닮아서 사납고 독하다"라고 너를 나무랐지.
너는 바로 위 넷째 언니와 전주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언니가 게으르다고 밥도 네 몫만 해서 도시락도 네 것만 싸가지고 다녔다고 하더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너는 공무원시험에 합격을 하고, 1982년에는 야간대학교에 진학해서 직장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진행하였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쁜 너를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지. 너는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바로 위 넷째 언니보다 먼저 결혼을 했지. 결혼을 해서 첫 딸을 낳고, 그 밑으로 아들, 딸을 낳아서 너는 2녀 1남 3남매를 두었지.
나는 평소에도 7명의 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지.
"여자가 결혼을 해서도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일이 있어야 남편에게도 당당하고 시댁에도 당당하다. 혹시 너희 남편이 아버지처럼 가정과 자식들에게 무심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든 나처럼 참지 말고 이혼하거라. 남편의 잘못이 분명한데 무조건 참으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네 남편이 시댁에서 셋째 아들인데도 장남노릇을 하느라고 너에게 생활비도, 아이들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다. 네가 힘들게 번 돈으로 네 가족의 생활비와 아이들 양육비를 모두 부담한다고 했지. 나는 너의 첫딸이 돌이 되기 전에 남편이 바뀌지 않으면 차라리 이혼을 하라고 했지만, 너는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네 남편과 몇 번을 더 산다 안 산다 했지만 3남매를 두고 지금까지 살고 있지.
남다른 남편과 시댁을 상대로 너는 단 한 번도 기죽지 않고 너의 의견과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면서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섯째 딸아. 네 마음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만 찾지 말아라. 한 번쯤 나에게는 문제는 없는지. 내가 변화해야 하는 것은 없는지 너 자신을 한번 돌아보거라. 똘똘하고 야무지게 잘 자란 네 3남매들이 있지 않느냐. 남편이 변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남편을 원망하지는 말아라. 결혼 초기에 네 남편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않았더냐.
누구 하나 너의 등을 떠밀어서 네 남편과 결혼을 강요한 사람은 없다. 네 스스로 그 사람을 사랑했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할 수 있다면 이혼도 여러번 했을 텐데 이혼을 선택하지 않은 것도 너 자신이 아니더냐.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 하고도 나는 열두 남매를 낳고 72년을 살았다. 나는 너희 아버지를 마냥 원망하면서 살지 않았다. 너희 열두 남매들 때를 놓치지 않고 학교에 보내려면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다. 너희 아버지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너희 열두 남매만 바라보고 살았다. 너희 아버지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다. 나는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너 또한 너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바뀌지 않는 네 남편을 바꾸려고만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네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주어야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머무르게 된다.
너 자신은 타인을 위해 아무것도 베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너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베풀지 않는다고 원망해서는 안된다.
내가 너희 열두 남매를 가르친다고 바쁘게 사느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 못했구나.그래서 네가 작은 일에도 뽀죡한 가시를 세운 채로 사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구나.
너도 세 명의 자식을 낳고 키운 엄마가 아니더냐. 열두 자식을 낳고 키운 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미워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각박하게 느껴지는 너의 삶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부디 너 자신을 아끼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이 아닌, 네 스스로가 만족한 삶을 살아가기를 엄마는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