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0살 나이에 너를 낳고 나서 나는 5남 5녀 10남매를 낳은 것으로 더 이상의 출산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네 밑으로 두 명의 여동생을 낳았으니 살아가면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까지 친구들과 동네 골목길과 산과 들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 한쪽 눈만 크게 쌍꺼풀이 진 눈으로 웃음을 치는 얼굴이 귀여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구슬치기, 딱지치기, 자치기를 하느라 책상 서랍 속에는 온갖 장난감과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었지.
큰형이 너의 그런 모습을 시(詩)로 썼는데, 그 시가 너와 딱 어울리더구나.
개구쟁이
- 한 풍 작
지금의 개구쟁이는
지난날의 나
하루만큼씩 멀어져 가는
나의 그림자
숙제장 첫 갈피에
꼬장꼬장 큰 글자로
"여기서부터 숙제다."
다음장에는 "오늘 숙제 끝이다"를
더 크게 써 놓고
휑하니 뺑소니쳤다
그의 서랍을 열면
열 장씩 스무 장씩 묶어 놓은 365장의 딱지
이 빠진 하모니카가 뒹굴고
장난감 말, 춤추는 소녀, 꽃유리구슬,
권총, 지프차, 토막연필, 오뚝이,
이런 것들이 모여
언제나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냇가에선 송사리를 쫓고
하늘을 보면 구름을 쫓고
긴 잠결엔 꿈을 좇고
골목대장 개구쟁이는
지난날의 나
시원스러운 아주 맹물 같은 녀석.
너는 네 형들과는 나이 차이가 제법 있고, 누나들과 여동생 사이에서 자라면서 형들보다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네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했지. 그때 너와 누나들 그리고 동생들은 적지 않게 고초를 겪어야 했지.
네 형들은 아버지께서 농협에 다닐 때여서 아버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지 않았지만, 너는 중학교 사춘기 시절을 아버지로 인해서 힘들게 보냈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어린 자식들에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는데도 너희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힘든 일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너희들에게 시켰다.
사춘기시절을 보내던 너는 그런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지.
"왜 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엄마만 힘든 일을 해야 하냐고. 엄마도 아버지처럼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했지.
밥상머리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으면서 '이래라저래라'하고 잔소리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너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 그런 너를 보고 아버지는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는데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 불효자식, 너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다"라고 너와 누나의 책가방을 돼지우리에 던져버리기도 하고, 집 옆의 논 가운데에 던져 버렸지.
너와 누나는 돼지우리에 던져진 가방과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집 옆 봇도랑의 흐르는 물에 책과 가방을 씻었지. 물에 씻은 책을 햇볕에 말리면 책의 두께는 예전보다 두꺼워졌고, 가끔 씻기지 않은 책갈피에서는 돼지똥 냄새가 솔솔 풍기기도 했지. 그런 상황에서 너의 학교성적이 좋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느냐.
너는 머리도 좋아서 공부도 제법 잘했지. 기분이 좋으면 학교 성적이 쑥쑥 위로 올라갔지만, 아버지부터 기분 나쁜 폭언이라도 들으면 짜증을 내고 공부도 하지 않아서 성적이 뚝뚝 아래로 떨어졌지.
네가 중학교 3학년 때 형들처럼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렀지만 불합격을 했지. 그러면 후기 고등학교에라도 진학을 시켜야 하는데 네 아버지는 전주고등학교가 아니면 보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 그렇게 봄이 되고 여름이 오는 데도 너는 집에서 빈둥 빈둥 시간을 보냈지.
그때 둘째 형이 너를 서울로 데리고 가서 학원을 보내서 다음 해에 경기상업고등학교에 합격을 했지.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너는 공부도 잘해서 3학년 여름방학 때 조흥은행에 취직이 되었지.
나는 네가 은행에서 근무하는 중에도 공부를 더 해서 넷째 형과 넷째 누나처럼 야간대학교에 다녔으면 했다. 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별도로 시간을 내어 대학입학 준비하기가 어려웠을 터이지. 그렇게 너는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너는 1992년 12월에 결혼을 했고 두 딸을 두었다. 살아 생전 나는 열두 자식 중에서 너에게만 아들이 없어서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너에게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 세상에는 딸도 아들 못지않아서 아들을 고집할 필요가 없더구나.
나는 항상 마음으로 네 형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잘 사는데, 형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결혼도 늦은 네가 어서어서 자리를 잡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조흥은행과 통합 한 신한은행에서 부지점장으로 근무하던 네가 2007년 네 처와 이혼을 했지.
그렇게 네가 대학교를 입학하지 못한 것도, 이혼을 한 것도, 아들이 없는 것도 나에는 아픔이었고 안타까움이었다.
그래도 너는 혼자서 두 딸을 야무지게 잘 키웠지. 네 뒷바라지를 받고 큰 딸아이가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에 합격했을 때 기뻐하던 너의 모습이 생각나는구나.
그 딸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잘해서 좋은 짝을 만났고 2022년에는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더구나. 네 사위도 인상이 서글 서글한 것이 성격도 좋아보여서 내 마음에 쏙 들더구나.
너의 둘째 딸도 스스로 공부도 잘하고, 알아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뿌듯하다.
네 두 딸은 똑똑하고 야무져서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더구나. 다만 지난해 환갑이었던 네가 스스로 건강도 잘 챙기고 지금보다 술을 줄였으면 좋겠다.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셋째 누나와 두 동생들이 너를 걱정하더구나. 나도 네가 걱정이다.
나의 막내아들아. 다른 사람들이 너를 걱정하지 않도록 네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