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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라 Oct 20. 2023

엄마의 눈물..

두 번 목격했던 엄마의 눈물

저는 지금의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도 많이 있었고, 가끔은 힘이 들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여섯 배나 더 많은 자식을 둔 엄마는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오래전 엄마는 나이 어린 나를 앞에 두고서 가끔은 낮은 목소리로 고개 하나를 겨우 넘었더니, 또 넘어야 하는 더 큰 고개가 나타난다고 한숨을 내쉬고는 했습니다. 철이 없던 그 시절의 저는 엄마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고 나서, 가끔 아이들이 소풍을 가는 날 새벽 일찍 일어나서 김밥으로 도시락을 장만하면서 엄마는 14년 동안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자식들의 도시락을 준비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다 한번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엄마는 어떻게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들들을 기차통학을 시키기 위해서 새벽밥을 지어야 했는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연년생의 두 아이를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매 학기마다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준비할 때마다 저는 남편의 도움을 받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자식들의 등록금을 준비하기 위해 친정으로, 동네 곗방으로, 이웃들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서 고개 하나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엄마의 앞길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 모진 세월을 엄마는 어떻게 견뎌 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저는 가끔 하고는 합니다.


그래도 엄마는 자식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마냥 힘이 들다고 하소연하지 않았고, 누구 때문이라고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강인한 모습을 보였던 엄마도 언제인가 너무나도 삶을 살아가기가 힘이 들었는지 철없는 어리기만 한 딸을 안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엄마의 눈물 하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국민학교 2학년에 다니던 나에게 팔베개를 하고 안방에 누워서 엄마는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때 당시 고향에서는 먼 산에 붉은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는 봄이면  동네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경치 좋은 곳으로 화전놀이를 갔습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그 화전놀이에 동참을 했습니다. 엄마는 그때 화전놀이를 가서 적당하게 한잔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안방 아랫목에 누워 양쪽 두 팔에 열한째인 저와 열두째인 동생을 안고서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희 둘만 있으면 이렇게 양쪽 팔에 끼고서 새처럼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텐데, 자식이 열둘이나 되어서 그렇지도 못하는구나..."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8살의 어린 저는 엄마의 그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고 엄마에게서 풍기는 술냄새가 싫어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오면서 50년 전 엄마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여러 차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목격한 엄마의 눈물에 담긴 뜻을 지금도 저는 알 듯하면서도 감히 다 알지 못합니다.

 



엄마의 눈물 둘.


2010년  6월, 89살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6개월간의 요양원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갑자기 건강상태가 악화되어서 병원에 입원을 했고 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는 다리가 많이 불편하여서 전주 장례식장에는 오지 못하고 집에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 엄마를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휠체어를 탄 엄마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서 갑자기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 그래.. 이렇게 갈 것이면서 그동안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소.  걱정하지 말고 떠나시오. 내가 좋은 곳으로 가라고 천도재도 올려 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요.."


18살 나이에 아버지와 혼인을 하고 열두 남매를 낳고 72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아버지로 인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일보다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단단하게 마음을 다져 먹어야 했던 엄마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소리 내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까지 아버지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딸들과 며느리들이 엄마의 눈물 앞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흘리던 엄마의 눈물의 의미를 여러 번 생각을 해 보았지만, 지금까지도 저는 알 듯하면서도 다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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