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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아래 담배향 깃든 통닭

by 이시랑 Mar 30. 2024


브런치 글 이미지 1


    검지 손가락 마디를 깨물었다. 질겅질겅 씹으며 불안을 잠재웠다. 과장님은 그런 나를 보더니 질문을 던진다.

    "야 뭐 해? 너 왜 또 손가락을 깨물고 있어? 차라리 담배를 피우라니까."

    몇 번을 봐도 이해가 안 된다는 식의 과장님의 눈빛이 천천히 나를 훑기 시작했다. 왼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고, 오른손으로는 왼팔을 받치고 있었다. 

    "이게 참 고쳐지질 않네요."

     나도 모르게 또 손가락을 깨물었구나. 서둘러 입에서 손을 떼어냈다. 무의식적으로 생각이 많아질 때면 손가락을 껌처럼 씹는 버릇은 여간 고쳐지질 않는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내가 과장님을 따라 또 흡연장에 온 것이다. 과장님한테선 유일하게 디스플러스를 냄새가 흘러내렸다. 과장님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연기를 내뿜었다. 매캐한 담배향이 코로 다가왔다. 익숙하고 지겨운 냄새였다. 새아빠 생각이 났다. 


    새아빠는 술에 얼큰하게 취하면 통닭을 사 왔다. 그 당시 한 마리에 3천 원 정도 했던 길거리 옛날 통닭이었다. 검은 봉지 속에 들어있는 얇은 포일에는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나왔고, 아주 고소한 향기가 내 코를 때렸다. 나는 뛸 듯이 기뻐서 담배 향이 잔뜩 묻어 나오는 새아빠의 품에 안겼다. 담배 향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새아빠는 자신의 큼지막한 손으로 내게 닭다리를 뜯어서 건네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왔고 굉장히 먹음직스러웠다. 나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작은 손을 내밀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 내게 사랑으로 다가온 듯했다. 넘겨받은 애정을 게걸스럽게 뜯으며 하염없이 먹어댔다. 즐거움이 피부를 감쌌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아빠는 술과 함께 늦은 밤까지 춤을 추다 집에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를 이끌고 밖을 나섰다. 집에 있긴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며 껄껄 웃어댔다. 눈을 비비며 나온 순간 내 눈은 번쩍 뜨였다. 밤하늘을 톡 하고 건드리면 별들이 폭포처럼 우수수 터질 것만 같았다. 집 근처 공원까지 가는 내내 고개는 하늘을 향해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통닭차와 마주했다. 새아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머니에서 3천 원을 꺼냈다. 행복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길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벤치에 마주 앉아 나는 통닭을 뜯고, 그는 담배를 피웠다. 우리만의 비밀. 엄마한테는 말하면 안 돼.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알겠다고 답했다. 새아빠가 입꼬리를 올리자 배시시 따라 웃었다. 담배 불빛이 별빛처럼 보였다. 


    어느새 과장님의 담배는 불빛이 멎고 재떨이에 몸을 던졌다. 가자는 손짓이 오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검지 손가락 마디를 깨물고 있었다. 오늘은 새아빠가 우리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꿈에 잠깐이라도 나타나면 하루를 망칠 만큼 미운 사람이지만, 여전히 그가 내게 쥐여준 다정함은 좀처럼 씻기질 않는다. 구석구석 잡혀있는 기억을 꺼내보면 늘 이런 식이다. 고작 3천 원으로도 누군가 기억 속에 자리할 수 있다니. 별빛으로 배경을 색칠하고, 담배 냄새로 향수를 깃들게 할 수 있다니. 그를 잊는 건 좀처럼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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