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좋아하는 일로 평생직업 만들기

취미가 일이 될 수 있을까?

by Leo
즐거우면 이기는 거다!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다.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조차 야구사에 독보적인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런 오타니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실력도 감탄스럽지만,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구복을 입고 야구장에 있을 때면 늘 표정이 밝고, 행복한 모습이다. 정말 부러운 것은 오타니의 성적이나 연봉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즐기는 모습 그 자체이다.


오타니, 넌 어찌 그리 잘하니?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스트레스가 된다는 얘기도 있다. 더 이상 즐기지 못하고 결과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라고도 한다. 대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하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


사람은 본인만의 고유한 체질, 기질,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태생적으로 본인만의 특성을 타고난다는 것인데, 유전자의 DNA로 물려받기도 하고, 자라는 환경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누구는 언어능력을 타고나고, 수학적 천재성을 가지거나, 음악에 천부적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특별한 소질이나 기질이 눈에 잘 띄지 않기도 하거니와, 재능이 보여도 안정된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시하고 외면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일을 잘하려면, 그 일을 잘해야 한다. 즉,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잘하니까 더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잘하면 재미도 생기고, 재미가 있으니까 더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순서다. 오타니도 그렇고, 손흥민도 그렇게 성공한 것이다.


복잡한 숫자를 꼼꼼하게 다루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회계사로 성공하는 것이고, 말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유튜버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재능과 재미가 만나야 몰입하게 되고, 탁월함이 만들어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즐기는 놈이 있는 이유이다.


어학연수 시절 접한 목공


20대 초반에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6개월간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홈스테이(home stay)에서 만난 ‘Rob’이라는 젊은 호주 집주인이 있었는데, 그가 사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인상적이었다. 이 젊은 집주인은 당시 30대 초반 싱글남이었고, 오래된 단층 주택에 4개의 방 중 3개를 아시아 유학생들에게 셰어(share)하면서, 본인은 일주일에 3일만 회사에 출근하며 살고 있었다.


회사를 안 가는 날에는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뒷마당 창고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며 지내곤 했다. 그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목가구를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뒷마당 한구석에 있던 작업장에는 여러 목공기계와 도구들이 가득 쌓여있었고, 내게는 그 공간이 무척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Rob은 늘 오래된 듯한 셔츠를 입고 다녔지만, 삶에는 늘 여유가 있었고, 표정은 항상 행복해 보였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나 가구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고, 내가 호기심을 보이면, 직접 만들어보게도 했다. 본인의 방에 있는 침대도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나도 Rob의 도움을 받아 나무 액자를 직접 만들어서 그 안에 거울을 넣어 내 방에서 사용했었다. 그것이 내 생애 첫 목공 작업이었다.


그 당시가 90년대 중반이었으니, 우리나라에는 주 6일 근무가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한창 일해야 할 30대의 나이에 일하는 시간보다 여가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도 너무 신기했다. 여유로운 선진국 호주의 삶이 갓 제대한 20대 내 기억에는 너무도 강하게 각인되었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마음속에 저런 여유로운 삶을 계속 동경했던 것 같다.

첫 목공 디자인 작품, 서랍 탁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잊고 있다가, 문득 5년 전에 목공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이직하는 기간 사이에 잠깐 시간이 나서 가까운 목공방을 찾아 등록을 했다. 도마 제작부터 시작해서 작은 테이블을 만들며 한창 재미가 생길 때쯤 새로 이직한 회사 일이 바빠져서 4 개월 만에 아쉽게 그만두었다. 그때 내가 은퇴하게 되면 꼭 목공을 배워서 취미로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목공 배우기 프로젝트

나만의 스툴 만들기


나무는 그 자체로도 가장 오래되고 친근한 자연 소재이다. 품종에 따른 나무 고유의 색과 각기 다른 특유의 나뭇결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작업할 때 느껴지는 나무의 은은한 향기는 마음을 편하게 하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은퇴 후에 배우려고 했던 목공을 이번 안식년 기간에 마음먹고 시간 투자를 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일이 평생 할 수 있는 취미가 아니라 평생직업이 될 수 있을지도 살펴보기로 했다.


다기 보관용 사방탁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제대로 목공을 배울 수 있는 스승을 수소문해서 알아봤다. 몇 군데 공방을 알아봤으나, <고범석가구>라는 공방이 마침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었고, 선생님의 수준 높은 작품도 마음에 쏙 들었다. 고선생님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시작한 목공 작업에 매료되어 8년 전부터 전업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23년 12월 말부터 평일 기초반으로 등록하여 톱질과 대패, 끌질 등 기초부터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목공을 본격적으로 익히며 이 일이 내 적성과 기질에 맞는지, 내게 소질이 있는지 그리고 직업이 될 수 있는지 하나하나 고민해 보기로 했다.

클레이 작업 테이블

목공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평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목공에 유리한 부분이 많았다. 창의적인 작업이고, 몰입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도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 모든 과정을 몸과 머리를 함께 써야 하는 분주함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원목의 나무 질감이 주는 따뜻함과 공방에서 풍기는 나무 향과 테이블 한쪽에서 그윽하게 올라오는 커피 향이 만나면 이곳이 힐링의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가공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도 창의적인 과정의 일부였다. 게다가 인공지능으로 많은 일자리가 대체되더라도, 기술과 예술의 중간 영역 즈음에 있는 이 목공 작업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길게 보면 기회 요인이었다. IT 기술이 발달할수록 아날로그와 인간의 감성은 다시 부흥할 거라 생각했다.


좋은 직업, 맞는 직업


9개월의 전체 과정을 마치고 나니, 목공의 재미와 매력, 그리고 내 적성과 재능이 종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일이 취미 이상으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일 수 있겠구나 생각되었다. 이 일의 사업성과 성장 가능성, 그리고 창업 시기는 여전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경험을 쌓기로 했다.


데니쉬코드로 만든 의자


평생을 사무실 책상에 앉아 기획일을 했던 내가 몸을 움직여 도구와 기계를 사용해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하지만, 내 기질과 성향, 그리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복합적으로 고민해 보면서 일을 찾는 것이 안식년의 숙제 아니었는가!


과거의 좋은 직업이 미래에도 여전히 좋은 직업이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는 좋은 직업이 아니라, 나와 맞는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드카빙, 깎아만든 흑등고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