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디에 살 것인가?

은퇴 후 집 이야기

by Leo

최근 5년간 나는 공유주거 회사의 멤버로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사업을 키워왔다. 서울 수도권의 치솟는 주거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고시원이나 열악한 원룸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 맹그로브(mangrove)‘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공유주거 컨셉을 구체화하고 여러 지점을 오픈해서 운영해 왔다.


많은 고민을 담았던 맹그로브 1호점


2030 세대 청년들을 타깃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주거 문제는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 은퇴한 시니어를 위한 주거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해 왔었다. 덕분에 은퇴 후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문제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은퇴 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 중 하나는 바로 ‘에이징 인 플레이스’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익숙한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말한다. 익숙한 동네, 단골 가게, 가까운 이웃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를 불편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살고 있는 현 거주지를 결정한 이유를 거슬러 생각해 보자. 직장과의 거리, 교육 환경, 교통 등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자녀가 졸업하고 직장을 은퇴하면, 살던 곳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익숙함‘만 남게 된다. 특히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게 되면 주거 면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시니어 주거 사업을 위해 여러 통계 자료를 살펴본 바로는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아파트 30평대를 가장 이상적인 주거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주택평형으로 불리는 84제곱미터가 전용면적 25평형이다. 보통 아파트 공급면적 30평대로 거래되는 크기가 전용 25평형이라고 보면 된다.


국민주택 25평의 이야기


국민주택의 전용 면적이 25평(약 84㎡)으로 설정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규정은 1977년에 제정되었는데, 당시 급격히 증가한 인구와 도시화로 인해 주택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정부는 빠르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국민주택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 평균적인 가구 규모는 4인 가족이었다. 전용면적 약 25평은 4인 가족에 최적화된 방 3개, 거실, 주방, 욕실로 구성된 주거 형태였는데, 이 크기는 건설사 입장에서도 경제성이 좋았기 때문에 여전히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규모가 되었다.


4인가족 맞춤 평형대, 전용 84제곱미터


하지만 2023년 기준, 우리나라 4인 가구의 비중은 13.3%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반대로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로, 이웃 세 집 중 하나는 1인 가구인 ’ 홀로 사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재미있는 계산을 해보자. 전용 25평 면적이 4인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니, 1인으로 나누면 몇 평씩 사용하는 것일까?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 주방, 화장실을 공용공간으로 보고, 이를 계산이 편하도록 5평으로 계산해 보면, 남은 공간은 한 사람당 5평씩 주어지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원룸의 크기가 5평 내외로 공급되는 것을 보더라도 납득이 가는 숫자이다.


인당 개인공간 5평 + 공용공간 5평


가족수에 따른 적정 면적을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1인당 5평 + 공용공간 5평이 사람이 생활하기에 합리적인 규모라는 것이다. 예컨대, 4인 가족이라면 전용 25평(85㎡), 3인 가족이라면 전용 20평(66㎡), 2인 가구라면 전용 15평(50㎡)이면 충분히 쾌적한 생활이 가능하다.


이것은 최근 공급되는 고급 실버타운의 방 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인 기준으로 약 6평~12평(20~40㎡), 2인 부부 기준으로 약 12평~21평(40~70㎡) 정도가 일반적이다.

주거 다운사이징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큰 비중의 자산이다. 선진국이 금융자산 비중이 높은 것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부동산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76%로 매우 높다. 따라서 고정 소득이 급감하는 은퇴 후에는 부동산 자산을 줄이고 금융 자산을 늘리는 것이 현명하다. 현금 흐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위치를 고집하면서 필요이상의 면적을 부동산으로 계속 깔고 앉아있으면 은퇴 후 현금 유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의료비나 생활비 지출에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어디에서 살 것이냐의 질문은 은퇴 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어디에 살 것인가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은퇴한 부부라면 면적을 줄이더라도 각자의 방을 가지길 권장하고, 만약 혼자 살아야 하는 공간이라면 가까운 곳에 커뮤니티를 가질 수 있는 곳이면 좋다. 아직은 다양한 주거 서비스가 제한되어 있지만, 앞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다양한 주거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내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도면 중 18평짜리 집 하나를 꼭 만들어 살아보고 싶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