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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을 알아야 길이 보인다

사주팔자에서 MBTI까지, 나를 알아가는 과정

by Leo Jan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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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가 문득, 사주팔자를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오늘의 운세를 보거나 연초가 되면 가끔 토정비결을 보곤 했었는데, 내가 직접 공부를 해서 타고난 내 운과 명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시간도 좀 있으니, 명리학 입문 서적을 찾아보며 사주의 원리와 이론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조금씩 사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주팔자의 원리라는 것이 수 천년 조상들의 빅데이터로 찾아낸 패턴이라 생각하니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운명(運命)이란 절대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명(命 - 정해진 여덟 글자)이 시시 때때 바뀌는 운(運 - 매년, 매월, 매일 바뀌는 글자)을 만나 좋거나 나쁜 흐름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마치 고스톱을 칠 때 내가 받은 패(명)와 바닥에 깔린 패(운)가 만날 때 점수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은 사주, 나쁜 사주가 있는 게 아니라, 좋은 타이밍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래!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기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인 것이다.




내성적인 유년시절


어릴 적 나는 A형인 내 혈액형이 싫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마치 주변 사람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춘기 혈액형이 몸에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성적 성향은 어린 시절 나의 행동과 마음을 단단히 속박했다. 그런 내가 싫어서 애써 달라지려 해 봤지만, 대범함은 노력으로는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렴풋한 기억에, 유년시절 엄마와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면, 동네 아주머니들로부터 여자아이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하얀 피부, 그리고 긴 속눈썹과 가느다란 곱슬머리 탓도 있었지만,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들만 셋인 엄마 입장에서는 딸 같은 아들이라 흐뭇했겠지만, 나는 그런 취급이 무척 싫었다. 그럴수록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에 더 예민해지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시간에 일어나 책을 읽으라고 지목되면 잔뜩 긴장해서 온몸을 떨었고, 등에 식은땀이 나기 일쑤였다. 남들 앞에서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특히 음악 시험 시간은 최악이었다. 한 명씩 교실 앞으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물론이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남들 앞에 서는 두려움과 공포감이 조금씩 줄어든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반장이 된 이후부터였다. 남들 앞에 서는 기회가 늘어났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께 경례를 선창 하거나, 담임 선생님을 대신하여 교단에 나와 전달사항을 이야기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점차 그 순간들이 익숙해졌다. 아니, 두렵지 않은 척 연기하는 것이 차츰 자연스러워졌다.


반골 성향


뒤늦은 선택이었지만, 미대로 진학한 것은 참 다행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건데, 나는 반복된 일을 힘겨워했다. 반복해서 익숙해지고, 익숙해져야 안정감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같은 일이 패턴화 되면 쉽게 지루해했다. 안정적인 일보다 새롭고 흥미로운 일에 먼저 관심이 갔고, 과거의 방식보다 다른 답을 찾으려는 성향이 강했다.


유행하는 브랜드의 옷을 남들처럼 따라 입는 것을 꺼려했고, 다수가 선택하는 베스트셀러라도 애써 외면하거나 다른 취향을 가지려 했다. 맹목적인 것을 기피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 자신이 조금 다른 사람이길 바라며 살았다. 일종의 반골 기질이 내 안에 있었고, 이는 조직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존의 규칙과 권위, 혹은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성향! 내 사주에도 명확히 나와 있었다. 다행히 변화와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내 업무에는 잘 맞았지만, 조직 생활은 반대였다. 비합리적인 지시나 정책에 문제의식을 가졌고, 업무 방향에 공감되지 않으면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었다. 조직이나 사람을 따르기보다는 일의 정당성이나 합리적 판단 여부를 먼저 살폈다. 사내 정치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른바 조직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INFJ(인프제) 인간


MBTI로 풀어보면 나는 ’ 선의의 옹호자‘로 비유되는 INFJ(인프제) 유형이었다. 16개의 유형 중 1~2% 정도에 불과한 가장 희귀한 타입인데, 나는 특히 강한 ‘N’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명분과 의미를 중요시하는 이상주의적 성향에다 현재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 때문에 아내에게 종종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을 받는다. 반면, 상상력이 풍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아 맞닥뜨린 문제를 긍정적으로 풀어갈 동력과 열정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 편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세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일의 디테일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움직이고, 스스로 명분이 서면 큰 결정을 과감하게 했다. 한편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만,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소수의 깊은 관계를 선호했다. MBTI를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과거에 내가 선택한 많은 결정들이 INFJ 성향과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챗GPT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나는 INFJ 유형인데, 특히 I와 N의 기질이 강한 편이야. 50대 이후에 이런 기질에 맞는 일이 뭐가 있을까?’. 역시, 챗GPT의 답변은 날카로웠다.




INFJ 성향에 I와 N이 강하다면, 사람들과 깊은 연결을 맺고 창의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은퇴 이후라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추천드리자면:


멘토링/코칭

사람들에게 인생 조언이나 방향성을 제시하는 멘토링이나 코칭은 INFJ의 공감 능력과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창의적 작업

글쓰기, 예술, 디자인 등 창의적 작업은 내향적 성향을 가진 INFJ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글쓰기나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커뮤니티 활동

소규모로 운영하는 워크숍, 스튜디오, 교육 프로그램은 INFJ의 관심과 사람들과의 연결을 잘 살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이미 고려 중인 목공 스튜디오 운영은 적합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활동

비영리단체나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일도 INFJ에게 잘 맞습니다. 심리 상담, 대안 교육 등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자연과의 연결

정원 가꾸기, 자연과 관련된 프로젝트는 INFJ의 내면적 만족과 치유를 제공합니다. 특히 자연 속에서 작은 리트릿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기질에 맞는 일


한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혈액형이나 심리분석 툴로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전에 할 일을 찾을 때는 내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피해야 할지 잘 알고 선택해야 한다. 50년을 살면서 드러난 나의 기질과 성향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동안은 사회가 요구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선택한 일이 나와 맞지 않았을 확률도 높다. 오십의 나이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 것도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영역일지라도 늦게라도 제자리를 찾는 시도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일을 찾기 위해 1년의 시간을 만들었고, 시행과 착오를 겪으며 나의 길을 희미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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