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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Aug 08. 2023

작은 아씨들

감독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 영화 <바비>를 보고 예전에 작성했던 글이 생각나서 업로드 합니다. 2020년 1월에 작성했던 글 입니다.


소설 <작은 아씨들>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 제목은 알고 있을 것이다. 1868년에 출판된 여성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은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불행한 시대를 씩씩하게 살아내던 4명의 자매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 하나이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TV 드라마로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 졌다. 

같은 원작의 <작은 아씨들>이 또 한번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다. 혹시 옛날 영화가 아닐까하는 우려는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이름을 듣는 순간 사라진다. 영화의 감독은 그레타 거윅, 여우 주연은 시얼사 로넌, 남우 주연은 티모시 살라메이다. 영화 팬이 아니라면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이름들은 2018년에 개봉했던 <레이디 버드>의 감독과 주인공들이다.  여기를 참조


영화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시얼라 로넌(좌), 감독 그레타 거윅(우)


영화의 감독이자 각색 시나리오를 쓴 그레타 거윅은 배우로 더 유명하다. 2006년에 데뷔한 그녀는 2014년 <프란시스 하> 개봉 이후 국내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 프란시스는 뉴욕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우리들처럼 생계를 걱정하고, 사랑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던 여성이었다. 뉴욕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의 주인공들처럼 될 것이라는 환상을 없애주는데 <프란시스 하>보다 더 좋은 영화는 없다. 영화의 성공과 함께 현실 속의 우리들의 모습과 꼭 닮은 프란시스는 상위 10%나 하위 10%가 아닌 중간 80%를 대변하는 여성 캐릭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배우 그레타 거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도 한 <레이디 버드>는 <프란시스 하>의 프리퀄과도 같은 영화였다. 프란시스는 어떻게 뉴욕에 정착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시얼사 로넌)은 약간의 허세와 꿈 이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다. 엄마와 끊임없이 다투고, 이성과의 사랑과 동성과의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향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그 시절 나를 꼭 닮았다. 마치 내 일기장을 들킨 것만 같다. 


관객들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영화 <레이디 버드>.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감독 작품인 <작은 아씨들>은 <레이디 버드>를 좋아한 관객들이라면 너무나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자신의 꿈을 찾아 뉴욕으로 떠난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과 다시 조우한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시얼사 로넌이 연기한 둘째 딸 조(Jo March)이지만 카메라는 다른 자매들에게도 공정하게 시선을 나누어 준다. <레이디 버드>의 또 다른 스타인 티모시 살라메는 자매들과 썸을 타며 또 한번 나쁜 남자로서 매력을 발산하고, 최근 가장 핫한 배우인 플로렌스 퓨는 <미드 소마> 때와는 전혀 다른 도도한 모습으로 연기한다.  


로리역의 티모시 살라메(좌), 에이미 역의 플로렌스 퓨(우)


소설 원작의 영화이지만 영화는 원작과는 달리 자매들의 현재와 과거의 회상을 오가며 진행된다. 회상 속 과거는 낭만적이다. 자매들은 사소한 일로 다투고, 선한 일을 하며 기뻐하고, 곧 다가올 로맨스를 기다리는 소녀들이다. 하지만 현실의 자매들은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남성 중심으로 짜여진 시스템 앞에서 좌절한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여 아버지를 전쟁터로 보냈던 과거보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구해야 하는 현실이 더 힘들어 보인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현실은 힘든 법이다. 

아마도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 감독이 자신의 차기작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소설을 고른 이유는 자매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늘 ‘현재’라 불리우는 시절을 버텨내야 하는 모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작은 아씨들> 배우별 포스터


영화의 포스터만 보고 <작은 아씨들>은 스타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로맨스 영화라고 기대하는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끝났을 때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성 중심이라는 시스템에 무작정 반대하기 보다는 타협을 시도하려는 감독의 시선에 동참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려던 자매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영화는 (벌써) 올해 최고의 여성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조차도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시대에 <작은 아씨들>은 여성 감독이 연출한, 80%의 평범한 여성들에게 진짜 위로와 희망을 주는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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