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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r 31. 2016

한글 탄생의 비밀

세상의 큰글, 온누리에 한글~ 2


 

 “문사철!”

 “한여울!”

 보고도 못 믿을 상황이었다. 두 아이는 낯선 주변 환경 때문에 한참이나 두리번거렸다.

 “여기 어디야? 영화 촬영장? 코스프레 행사장?”

 사극 촬영장이나 민속촌에 같았다.

 문사철은 달빛 무사가 도와준,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망각 자객이 한여울과 문사철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려던 찰나, 달빛무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조선의 한양으로 간 것이다.


 “문사철, 내 말 잘 들어. 우리 이상한 곳에 온 것 같아.”

 “이상한 곳? 어디?”

 “아무래도... 한양에 온 것 같아.”

 “뭐, 한양?”

 “조선시대의 한양...”

 문사철은 한여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한여울, 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문사철은 한여울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나, 멀쩡해. 그리고 여기 조선 맞아. 우린 먼 곳에 왔어. 거리가 아닌 시간으로 아주 먼 곳...”

 문사철은 한여울의 말에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망각자객의 저주에 걸린 것 같아...”

 “저주? 웃기고 있네. 그놈이 우릴 납치하려고 꾸민 음모일거야. 이건 아니지! 보호자 허락도 없이.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저주에 걸렸다고 쳐. 근데 무슨 재주로 저주를 풀어? 좋아, 그래그래, 까짓 저주를 풀었다고 치자, 그럼 집에는 어떻게 가냐고?”

 문사철은 혼자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그러더니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관가 가서 따지든가!”

 그때였다. 문사철보다 더 크게 악 쓰는 소리가 들렸다. 문사철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나는 쪽으로 움직였다. 한여울도 문사철을 따라갔다.


 

 “남의 쌀을 갖다가 먹었으면 갚아야지!”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쌀을 갚으라고 소리 질렀다. 듬성듬성 난 염소수염의 남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이보게, 이미 다 갚았잖은가. 새벽부터 밤까지 죽도록 나무, 해서 말이야.”

 누덕누덕 떨어진 옷에 새끼발가락이 삐죽 나온 짚신을 신은 나무꾼이 사정하고 있었다.

 “예끼, 이 사람! 빌려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오리발이야?”

 염소수염 남자가 나무꾼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아니, 쌀 한 가마니를 빌려서 3년째 갚아도 아직 남았다니...”

 나무꾼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다.


 “여기 그렇게 적혀 있으니, 억울하면 관가에 가면 될 게 아닌가!”

 염소수염 남자가 손에 든 종이를 흔들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난 알겠어.”

 문사철은 종이 흔드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그 문서 좀 보여주세요.”

 “가! 어린것이 왜 어른 일에 끼어들어?”

 그러나 포기할 문사철이 아니었다. 안경을 쓸어 올리는 척하다가 문서를 빼앗았다. 학교에서 늘 그런 식으로 여자 애들 일기장을 빼앗던 문사철이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한 것이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아저씨, 여기 글자 고쳤죠? 티가 나네.”

 문사철의 말에 염소수염 남자는 문사철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문서를 위조하면 곤장이 몇 대더라?”

 한여울도 거들었다. 염소수염 남자는 ‘곤장’이라는 한여울 말에 문서를 내팽개치고 달아나 버렸다. 


그림 속 배경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chessknight/220528318693


 “고맙다. 얘들아. 어머니, 약값으로 빌린 쌀을, 이미 몇 곱절은 더 갚았는데... 문서에 적혀 있다고... 흑흑.” 

 나무꾼은 문사철과 한여울에게 고맙다고 다시 절을 했다.

 “아, 아니에요.”

 문사철은 갑자기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나으리, 이런 법은 없는 거여유.”

 다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문사철과 한여울은 그쪽으로 움직였다. 나무꾼도 함께였다.

 “나으리, 부역 갔다 온지 3일 됐는데, 또 부역을 가라니요?”

 “아, 글쎄.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여기 적힌 대로 하는 것뿐이니 내 원망, 말게나.”


 포졸 앞에 무릎을 꿇은 젊은 사내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하고 있었다.

 “나으리, 이름이 같아서 지난번에 제가 대신 갔다 왔다면, 이번에는 그 사람이 가면 되잖아유.”

 “아, 어쩌겠나? 법은 법이니까, 법대로 할 수밖에!”

 “아이고, 우리 식구 다 죽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흑흑흑...”

 그는 이름이 같은 사람 대신 부역을 갔다가 이번에 자기 차례가 되어 또 부역을 가게 됐던 것이다.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이 많았다.

 

    

                                      한글 창제 이전 표기법-구결


 “저기 뭐라 쓴 거야?”

 “어려운 한문을 백성들은 읽을 길이 없네, 그려...”

 방을 읽지 못해 불이익당하는 백성이 수두룩했고, 논밭을 사고 팔 때도 글을 몰라 억울한 일 당하는 백성이 허다했다. 글자를 몰라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은 심각했다.

 

 “이게 다 글자를 읽지 못해 생긴 일이야.”

 한여울의 말에, 문사철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실감했다. 

 ‘아, 한글... 탄생의 비밀은 바로 사랑이구나...’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광화문 세종대왕상


 세종대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내 이를 위하여 새로 28자 만드노니...” 

 한글 탄생의 비밀은 세종의 백성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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