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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20. 2018

어떤 노래 좋아해요?

30대들의 18번




가로등 불빛이 예쁘게 반짝일 무렵. 우리는 자그마한 뮤직바에 도착했다. 가게 밖까지 흘러나오는 노래는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입에 익은 가사를 흥얼거리며 적당한 자리를 찾았을 때 테이블에 붙은 짧은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93년생 이후 출입금지. 흔히 말하는 요즘 세대, 그러니까 이 뮤직바의 노래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테니 장난스레 써놓은 문구인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그 세대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사람들이었다. 



"얼른 가서 펜 좀 받아와 봐. 각자 듣고 싶은 곡 신청하자."



선배의 말에 나는 재빠르게 DJ 부스로 달려가 노란 포스트잇과 볼펜을 받아왔다. 가게 안엔 나무로 만든 투박한 테이블이 일곱 개가량 있었는데, 자리를 채운 사람들 대부분이 삼사십 대 직장인이었다. 들려오는 대화로 추측해보건대 우리 뒷자리 테이블은 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 같았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그때 기억나냐는 한 마디로 한참 동안 옛 기억을 곱씹는 중이었다. 그중엔 내 추억과 닮은 이야기도 있었다. 때마침 스피커에선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의 전주가 흘러나왔고, 첫 소절이 시작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소절 한 소절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와, 이 노래 많이들 불렀었죠. 오랜만에 들으니까 더 좋네요. 예전엔 부를 곡도 참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노래방에 가면 최신곡 차트는 아예 보지도 않는 것 같아요. 나이 들었단 증거겠죠."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래 노래방에 간 기억도 거의 없었거니와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턴 잠자코 앉아 누군가의 노랠 듣고 있을 때가 더 많았고, 억지로 떠밀려 부르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옛날 노래만 골라불렀던 것 같았다. 최신곡 좀 불러봐, 핀잔을 줄 때면 그리 오래된 곡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그것도 몇 년은 훌쩍 지나버린 것들이었다.



"부쩍 옛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된 것 같지 않아요? 항상 유행하는 노래만 들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매달 결제하는 음악 어플에서 최신 곡이 아닌 직접 검색해서 듣게 된 것은 아마도 이십 대 후반 무렵. 엄마가 종일 틀어두었던 이문세, 절친한 선배가 좋아했던 김현식, 어느 선배의 오랜 우상 신해철, 누군가가 푹 빠져있는 사람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듣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가사는 하루 종일 입가를 떠날 줄 몰랐다. 이곡의 진가를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싶은 날이 꼭 올 거라던 어느 선배의 예언처럼 내게도 그런 날이 온 것 같았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그때 그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가 된 나는 그 곡 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똑같이 받고 있었다. 촌스럽다 말한 어떤 멜로디가, 따분하다 느낀 어떤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날이 내게도 찾아왔음을 실감했다. 



"수현 씨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옆 자리에 앉은 막내의 물음에 누군가의 18번이었던 곡이 생각났다. 이맘때쯤이 되면 자연스레 찾아 듣게 될 거라던 그 곡을 요즘 가장 자주 듣고 있었다. 그 몇 줄의 가사에 반해 그 가수의 모든 노래를 찾아 듣고 있는 나는 포스트잇 위에 제목을 적으며, 서른 즈음되면 아마 자주 듣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따라 부르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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