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들의 18번
가로등 불빛이 예쁘게 반짝일 무렵. 우리는 자그마한 뮤직바에 도착했다. 가게 밖까지 흘러나오는 노래는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입에 익은 가사를 흥얼거리며 적당한 자리를 찾았을 때 테이블에 붙은 짧은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93년생 이후 출입금지. 흔히 말하는 요즘 세대, 그러니까 이 뮤직바의 노래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테니 장난스레 써놓은 문구인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그 세대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사람들이었다.
"얼른 가서 펜 좀 받아와 봐. 각자 듣고 싶은 곡 신청하자."
선배의 말에 나는 재빠르게 DJ 부스로 달려가 노란 포스트잇과 볼펜을 받아왔다. 가게 안엔 나무로 만든 투박한 테이블이 일곱 개가량 있었는데, 자리를 채운 사람들 대부분이 삼사십 대 직장인이었다. 들려오는 대화로 추측해보건대 우리 뒷자리 테이블은 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 같았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그때 기억나냐는 한 마디로 한참 동안 옛 기억을 곱씹는 중이었다. 그중엔 내 추억과 닮은 이야기도 있었다. 때마침 스피커에선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의 전주가 흘러나왔고, 첫 소절이 시작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소절 한 소절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와, 이 노래 많이들 불렀었죠. 오랜만에 들으니까 더 좋네요. 예전엔 부를 곡도 참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노래방에 가면 최신곡 차트는 아예 보지도 않는 것 같아요. 나이 들었단 증거겠죠."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래 노래방에 간 기억도 거의 없었거니와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턴 잠자코 앉아 누군가의 노랠 듣고 있을 때가 더 많았고, 억지로 떠밀려 부르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옛날 노래만 골라불렀던 것 같았다. 최신곡 좀 불러봐, 핀잔을 줄 때면 그리 오래된 곡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그것도 몇 년은 훌쩍 지나버린 것들이었다.
"부쩍 옛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된 것 같지 않아요? 항상 유행하는 노래만 들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매달 결제하는 음악 어플에서 최신 곡이 아닌 직접 검색해서 듣게 된 것은 아마도 이십 대 후반 무렵. 엄마가 종일 틀어두었던 이문세, 절친한 선배가 좋아했던 김현식, 어느 선배의 오랜 우상 신해철, 누군가가 푹 빠져있는 사람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듣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가사는 하루 종일 입가를 떠날 줄 몰랐다. 이곡의 진가를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싶은 날이 꼭 올 거라던 어느 선배의 예언처럼 내게도 그런 날이 온 것 같았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그때 그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가 된 나는 그 곡 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똑같이 받고 있었다. 촌스럽다 말한 어떤 멜로디가, 따분하다 느낀 어떤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날이 내게도 찾아왔음을 실감했다.
"수현 씨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옆 자리에 앉은 막내의 물음에 누군가의 18번이었던 곡이 생각났다. 이맘때쯤이 되면 자연스레 찾아 듣게 될 거라던 그 곡을 요즘 가장 자주 듣고 있었다. 그 몇 줄의 가사에 반해 그 가수의 모든 노래를 찾아 듣고 있는 나는 포스트잇 위에 제목을 적으며, 서른 즈음되면 아마 자주 듣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따라 부르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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