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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ug 03. 2020

어른들의 장래희망

어느 영화 속 대사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합정역에 간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온통 낯선 것들 투성이. 자기소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나이, 직업, 왜 수업을 듣게 됐는지 정도 얘기하면 무난하려나. 얼핏 보기에도 비슷한 사람은 없어보이는 강의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꽉 차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어머님은 정년 퇴임 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셨다고 했다. 영국에 머물 때, 영어로 된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고, 그 계기로 번역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보니 직접 쓰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더라고. 이 마음이 또 어디로 흘러갈지 확신할 순 없지만, 일단 뭐라도 쓰고 싶어 왔다며 싱긋 웃어 보이셨다. 가장 연장자이신 그분의 소개가 끝나자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도대체 그건 언제쯤 알게 되는 걸까요. 대학생처럼 보이는 친구도, 소개를 마친 어머님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보다 미래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더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23살 때는
정말 뭔가가 되어있고 싶었어.
- 23살 때까지 되어야 할 건
바로 너 자신이야.

_ 영화 '청춘스케치'


    

이 대사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나는 주인공과 같은 이십 대였다. 그때는 '지금이라도 찾으면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었건만, 삼십 대가 된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이건 직업과는 다른 문제라 더 어렵고 막막하다. 어떤 날은 그 목표가 있어야만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을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인데 되는대로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을 잘 모를 땐 확고했던 장래희망이, 어째서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은 모호해져 버린 걸까. 어린 날에 적은 장래희망을 떠올려보면 나는 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사람인데. 원하는 걸 해보기라도 한다면 그걸로 충분한 건가. 인생은 원래 그런 건가.



마지막 수업날이 되면, 다시금 모두에게 묻고 싶다. 어른이 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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