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 속 대사로부터
누구나 자신의 앞날을 알고 싶어 한다. 걱정 많고 예민한 나는 더 그런 편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사주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 지낸 적이 있었다. 태어난 날과 시간만 말했을 뿐인데 과거 일을 줄줄줄, 현재 일까지 줄줄줄, 가족보다 훤히 꿰고 있는 홍대의 한 여자분을 만나고난 후, 더더욱 맹신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귀가 얇은 사람이었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가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발길은 자연스레 사주집을 향했다. 그때 쓴 돈만 잘 모아놨어도 꽤 두둑한 비상금이 되었을 텐데, 두 발 뻗고 잠들기 위한 값이라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더 사주보기를 좋아하는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가 보낸 문자 속엔 잔뜩 신이 난 게 그대로 드러났다. 이 엄청난 사실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는 듯, 안부인사도 없이 깔끔하게 본론만 적혀있었다.
- 언니 언니! 전화사주라는 게 있대. 대박이지?
몇 달 전에 예약하거나 일찍 가서 줄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며 기뻐하더니, 곧바로 사주 본 내용을 상세히 말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또 맹신도처럼 그녀의 말 끝마다 '진짜?' '그것까지 맞췄다구?'와 같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용한 곳인 것 같아 동생으로부터 연락처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분은 내 목소리나 말투에 대한 것부터 10대, 20대, 30대의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막힘 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웃었다가 놀랐다가 반복하기 바빴는데, 갑자기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반드시 해줘야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그분이 물었다.
- 자기야 근데, 그 많은 사람들한테 다 이쁨 받아서 뭐할라꼬? 다 데리고 살끼가? 이 성격 지짜 바꾸기 힘들겠는데~
이상하게 그 말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 마음에 들게
연주하려고 애쓰지 마.
콩쿠르 심사위원 전원에게서 8점 받으면
물론 1등은 할 수 있겠지만
때로는 한 두 명에게 10점,
나머지에게 6,7점 받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 한 두 명에겐
평생 잊지 못 할 연주가 될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겁내지 말고, 네 마음을 따라가 봐.
_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게 싫어 진심을 꽁꽁 숨겼던 내 모습이 생각나서일까. 보지 않아도 될 눈치를 보며 나답지 않은 결론을 내렸던 게 생각나서일까. 한동안 그분의 말이 일상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5만원을 내고 들은 수많은 추측과 예측 중에 한 줄만이 또렷이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맴돌던 말이 조금씩 흐려질 무렵엔 맹신하던 사주에 대해 다른 마음이 생겼다. 우리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고 그들은 말하지만, 그 한 가지만은 반드시 바꾸고 싶다고. 그럴 수 있다면, 아마 내 평생의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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