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이었을까?

by 보라구름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지 3주가 가까워지고 있다.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처음 1주일, 그리고 그다음 주 초반.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가라앉는가 싶더니 요 며칠은 계속 하향곡선이다. 초반에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았던 때 상담에서 이 기분은 조증과는 다른 거라고, 차이를 알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며칠을 이렇게 가라앉고 수면의 질이 최하인 상태로 보내다 보니 그 당시의 상태가 조증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거나 글을 쓸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도 그랬다. 다만 스스로 치료 의지가 불타올라, 또는 그 의지에 고무되어 조증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게 아닐까.


4~5시간 남짓 간신히 잠이 들었다가 아침 일찍 깨고 나면 도무지 다시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아예 못 자는 것보다는 조금 낫지만 일찍 깨서 계속 잠을 설치는 상태로 있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고민 끝에 오늘부터 다시 푸로작을 2알에서 1알로 줄여서 먹어보기로 했다. 오늘 밤에도 효과가 없으면 낭패인데. 아니면 다음 상담에서 약을 바꿔달라고 말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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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다 깨서 다시 잠들 수 없는 괴로움이 있긴 하지만 푸로작 복용 후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가짜 허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식욕이 현저하게 줄었고 단 것이나 자극적인 것(기름진 것)을 원하는 빈도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런 것을 찾지 말아야겠다고 의식해서 잘 줄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욕구 자체가 감소했다. 3주 동안 체중도 3킬로그램 정도 줄었다. 더불어 음주를 즐기던 나였는데 술 생각도 별로 나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멍한 상태로 출근하는 것도 곤욕이고 밤에 다시 자다 깰까 봐 커피를 안 마시고 버티는 건 더 괴롭다. 돌아보면 한참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는 왕복 3시간 걸리는 출퇴근 거리로 이동하면서 하루에 두어 시간 자고 버텼던 날들이 있었다. 그건 명백한 자기 학대였던 것 같다. 어떻게도 할 수 없으니 그냥 나 자신을 괴롭히며 하루하루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조금씩 살해하던 날들이었다.


잠을 설치며 누워서 보내는 시간 중 건진 것이 있다면 멀뚱멀뚱 생각을 하다 보면 전에는 전혀 몰랐던,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알지만 억제해놨던 내 감정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둥실 떠올라준다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비로소 내 감정을 이해해 보려고 고개를 끄덕인다. 억압, 억제, 회피가 나의 방어기제로 단단하게 굳어져서 이렇게 한참이나 지나서야 내 감정을 알 수 있게 되어버렸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 수 있어서 다행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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