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었다. 돌아보면 집 안이 온통 난장판이 될 정도로 청소를 전혀 하지 못 하고, 냉장고 안은 쓰레기통 수준이 되어 상하고 썩은 음식이 가득했다. 그건 너무 바빴거나, 태생이 지저분하고 게으르거나, 쓰레기를 버릴 수 없는 병이 있거나, 더러운 걸 좋아하는 괴이한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스스로의 기본적인 생활도 케어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렸다는 징후였다.
너저분한 집안과 냉장고는 그대로 노출된다. 스스로 살아가는 공간을 방치한 것은 어떻게든 숨길 도리가 없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방치하는 것은 어떻게든 숨길 수 있다. 사회적 가면이 두껍고 여러 개라면 오래오래 숨길 수도 있다. 특정 부분의 역할만 무리 없이 해내면 나머지는 꽁꽁 숨겨둘 수 있다.
친구, 부모님이 가끔씩 집에 들러 청소를 대신해주고 갈 때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너무나 고맙고 또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의 손길로 정리 정돈된 깔끔한 공간에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기분에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엄두가 안 나는 나를 대신해 친구와 부모님은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을 내 다 버리고, 세면대에 낀 물때를 솔로 벗겨내주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소파 밑까지 말끔하게 치워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생색을 내거나 타박하지 않고 다만 걱정을 해주었다.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살면 건강 상할 텐데. 언젠가 아빠가 내가 혼자 살던 집에 물건을 가져다주러 오셨다가 집안 상태가 엉망인 것을 보고 한 시간도 넘게 청소를 하다 가셨다. 그리고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면 집을 이렇게 하고 살까 싶어서.
사는 곳이 그 모양이라 누가 집에 올 일이라도 생기면 며칠 전부터 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치우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데 쑤셔 박아 놓고 보이는데만 치우는 것 자체도 버거웠다. 그래, 딱 그랬다. 내 정신 건강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누가 내 안을 들여다볼라치면 기겁을 했고, 겨우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그 뒤로 모든 걸 쑤셔 박아 둔 커튼이 있어야만 했다.
막연하게나마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상담도 병원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오빠가 입원했던 정신병동에 면회를 갔던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병원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강한 약 때문에 멍해진 오빠의 얼굴을 보며, 내가 알던 오빠는 어디로 갔나 의아했다. 상태가 안 좋아서 가족들을 공격하고 괴롭혔던 모습을 볼까 두려워하며 병원에 갔지만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너무도 낯선 처음 보는 얼굴의 오빠가 있었다. 당시의 내가 입원 치료를 할 만큼 위중한 상태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정신병원은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싫었다. 상담이라는 것은 거의 생소했을 때라(지금으로부터 13~4년 전) 잘 알지도 못했다.
이렇게나 오래 아팠고 아주 많은 징후들이 있었음에도 그저 누르고 눌러가며 어떻게든 현실을 살아내며 지금까지 버텨온 삶이라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흘려보내고 열어보면서 안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나아지고 있는 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