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참는다, 숨이 멎을 때까지

by 보라구름

그러니까, 처음.. 내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때는 아마도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내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공부를 시키는 엄마 때문에 살기가 싫었다. 영어, 책 읽기, 피아노, 산수, 셀 수 없이 이어지는 공부. 웬만한 수능 앞둔 고3 정도로 공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날은 엄마가 볼펜을 거꾸로 쥐고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위인전을 읽어주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내가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더니 갑자기 조그만 손으로 엄마의 뺨을 꽤나 힘껏 때리더란다.


놀란, 엄마는 화가 났다기보다는 애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서 그런가 보다 싶어 책 읽기를 그날은 쉬었다고 했다. 참고로 어릴 때 내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낯선 사람이 오면 엄마 치마 뒤에 숨기 바빴고 어쩌다 말이라도 걸어오면 귀와 목덜미까지 새빨개져서 입도 뻥긋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엄마의 뺨을 세게 때리는 일이 있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전해 들었을 뿐이다.


내가 죽겠다고 결심하고 어떻게 죽을 수 있나 고민하다가 시도해본 방법이 숨 참기였다. 너무 어려서 그건 신체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숨을 참고 참다가 결국 푸~ 하고 뱉어버리는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싫어졌다. 죽겠다고 해놓고 살려고 숨을 뱉다니, 하면서.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씩 자기혐오가 싹텄는지도 모르겠다. 숨을 참는 것으로는 숨이 멎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 본 기억은 없다.


mask-2545827_1920.jpg


그 후로 엄마가 외출하고 난 뒤 오빠와 내가 산수 문제집을 풀어놓으라는 범위까지 풀어놓지 않았다가 벌어진 일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해가 아직 떠 있던 오후였고 엄마는 부엌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서 식칼을 꺼내왔다. 그리고 너희가 이렇게 엄마 말도 안 듣고 문제집도 안 푸니까 엄마는 살기 싫다고 하며 식칼로 배를 찔러서 죽어버리겠다고 하며 칼을 눈 앞에서 휘둘렀다. 우리를 죽이겠다는 게 아니었지만 그것 이상으로 공포스럽고 무서웠다. 산수 문제집 하고 누가 말하면 반사적으로 식칼이 떠오를 정도로 깊게 각인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 그 일을 이야기하니 엄마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으시다고 한다.


언제나 불행한 시기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지만 날카롭고 예민한 엄마와 늘 술 문제로 귀가가 늦고 경제적 문제도 일으켜 엄마와 자주 부딪히는 아빠. 그래서 내게 집은 따뜻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라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곳이었다. 엄마와 아빠 중 누구랑 살 것인지 정해야 할 거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고 정하지 않으면 고아원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벌써 자유롭게 살아갔을 거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들으며 자기혐오가 주입되기도 했다. 내 존재가 엄마의 불행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식만 아니었어도... 늬들만 아니었어도... 엄마는 내 눈에도 충분히 불행해 보였다.


비록, 두 번 다시 숨이 멎을 때까지 스스로 숨을 참아본 적은 없지만 좀 기이한 습성이 몸에 남아버렸다. 우습게도 얼굴에 붙이는 미용 마스크팩을 붙일 때마다 지금까지도 아주 잠깐 숨이 실제로 막힌다. 분명히 코를 막지 않았는데도 마스크팩이 얼굴에 밀착되는 그 찰나에 번번이 실제로 숨이 안 쉬어진다.


예전에 집단 상담할 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몸도 못 가누고 누워 있던 아기 시절에 오빠가 날 질투해서 이불로 몇 번이나 눌러서 숨을 못 쉬게 만드는 걸 보고 외할머니와 엄마가 기겁을 해서 떼어 놓은 게 수차례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이런 현상이 그것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복합적인 것 같다.


숨을 못 쉴 것만 같은(실제로 숨을 못 쉬는 것과는 상관없이) 상황에서 정말 숨을 못 쉬게 되는 이 기이함은 아무리 천천히 거울을 보며 심호흡을 해가면서 마스크팩을 붙여도 달라지지 않는다. 굉장히 짧은 순간이기도 하고 이제는 그러려니 해서 마스크팩 붙일 때마다 괴롭고 그런 건 아니다. 와, 아직도 이러네. 하고 피식 웃지만 갑갑한 명치가 불편하긴 하다. 이런 건 어떻게 해야 치료가 될지 모르겠다. 최면치료라도 해야 할까?


이전 14화눈을 감는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