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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Mar 17. 2024

20240314~0316

 2024_03014(목)

엎친데 덮친 격

 왜 모든 일은 한꺼번에 연달아 일어나는가. 어제 원고를 살펴보다가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걸 간신히 잘 추슬러놓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버렸다. 좋은 기회에 무료로 10회 심리상담(1회 50분)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본격 상담 시작 전에 일정 조율 및 사전 면담 형식으로 다음 주에 전화 상담을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이 당겨져서 오늘 하게 된 것. 사전 접수 상담이니 별 거 있겠나 싶었던 게 오산이었다. 상담을 받으려는 주요 내용을 당연히 말하게 되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30분 남짓 전화로 상담을 받고자 하는 내용과 지난 일들을 브리핑하듯 설명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경찰서에서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조서에 적고, 형사에게 설명하는 피해자가 된 것 같다는 생각. 끔찍한 일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것도 나를 휘청이게 하는데 그걸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다시 내 입으로 타인에게 전달하면서 가로로 베인 상처를 세로로 또 긋는 것 같았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루틴 일정으로 돌아갔다. 마음을 추스르고 저녁밥을 챙겨 먹고 오늘의 내가 할 일, 독서모임에 참여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서 저녁과 밤을 보내지 않았다. 





 2024_03015(금)

 실업인정 방문 신청

 1~3차는 온라인으로 구직활동 증명을 해도 되지만 4차는 방문해서 실업인정 신청을 하게 되어 있어서 오전에 고용센터에 방문해야 했다. 생각만큼 붐비지 않아서 일 처리는 빨리 끝났지만, 가능한 1초라도 덜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고용센터에 실업급여받으러 와서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 좋은 사람은 드물 것이고 대부분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닐 테지만 꾸역꾸역 밀려드는 비참함과 씁쓸함을 빨리 떨쳐내고 싶었다. 말로는, 마음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그곳에 있는 나를 견디기 힘들었다. 

 단지 실업인정 신청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인근의 회사에 다녔던 특정 시기에 지독하게 힘들었던 일들이 동시에 덮쳐오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한두 번 간 곳도 아니고 그 지역이 낯선 것도 아닌데 방문할 때마다 기이할 정도로 그곳을 한 번에 찾아가지 못했다. 오늘도 지하철을 거꾸로 탔고(맙소사), 지난번에는 길을 반대로 건너가 한 바퀴 크게 돌아서 찾아갔다. 심리적 저항이 단단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기어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맑고 화창한 오후에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서 그동안 먹지 않았던 약까지 찾아내어 먹고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오랜만에 울었더니 후련했다. 눈물을 참을 이유는 없다. 눈물이 나면 울면 된다. 



 

2024_03016(토)

 오뚝이가 되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악몽은. 꿈속에서 아랫니들이 와르르 빠져서 입 안을 굴러 다녔다. 입 밖으로 뱉어보니 치아는 금이 가서 조각나기도 했고 어떤 것은 통째로 빠져있기도 했다. 난감했다. 피가 났다거나 엄청나게 아팠던 건 아닌데 이가 많이 빠져버린 것이 당황스러웠다. 

 흥, 악몽은 악몽이고 내 소중한 하루는 하루다. 예전 같았다면 악몽에 잠식당해 오전은 날려버리고 오후의 절반 정도쯤 말라비틀어진 채 냄새까지 나는 걸레와 같은 심리 상태로 보냈을 테지만 이젠 아니다. 식사를 챙겨서 먹고 충분히 쉬어준 뒤 하려던 일을 했다. 미뤄둔 서평을 썼고, 하루만 보를 걸었으며, 코스트코를 두 바퀴나 돌았지만 아무런 물건도 사지 않고 나왔다. 집에 물건을 쟁여두는 나로서는 참 힘든 일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잘 해냈다. 

 힘든데 힘들지 않다고 쓸데없이 자기 최면을 걸지 않는다. 힘들구나, 많이 힘드네. 힘든 상황에 있는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힘든 채로 있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한바탕 구르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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