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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Mar 24. 2024

20240320~0323


2024_03020(수)

 아슬아슬 줄타기 

 하루의 시작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어제오늘 오전에 잡아둔 필라테스 수업을 취소한 덕분에 비교적 여유로운 시작이었고, 오후에는 오랜만에 나 홀로 영화관이 아닌 데이트 코스로 영화관에 다녀왔다. 평일 오후의 쾌적한 영화관람은 직장인이던 시절에는 휴가를 내고서야 누리던 호사였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하다. 

 저녁에는 예약해 둔 강연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컨디션이 별로라 불참했다. 노쇼 비용이 발생하지만 소액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저녁밥도 코스트코에서 장 봐온 것들로 잘 차려 먹었다. 예정된 일정을 두 개 취소한 것은 잘한 일. 예전처럼 미련하게 힘들어도 꾸역꾸역 다 하려고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과도한 일정 잡기와 취소가 내 심리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거의 일주일째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인데 아직은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2024_03021(목)

트라우마의 습격

  어제 새벽 4시까지 책을 보느라 잠을 못 잤다. 책을 꽤 좋아하고 많이 보는 편이지만 ott 시리즈 보느라 새벽까지 깨어 있는 일은 가끔 있어도 책 읽느라 날을 거의 샌 적은 없었는데, 드문 일이다. 물론 책을 덮지 못할 정도로 스토리가 흥미롭고 탄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책에서 다룬 내용이 내 트라우마를 강하게 건드리는 것이었다는 점. 게다가 일어나서 서평 마감에 맞춰 서평을 쓸 책이 있었는데 하필 그 책마저 트라우마에 대한 책이라 고통이 따따블로 얹어졌다.

 생각보다 위험하기도 했고,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일단 약을 먹고 하루를 그런대로 버티는 데 성공하긴 했다. 내일 일은 내일의 나한테 맡기기로 하고 밤에도 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미련하게 약을 거부하지 않고 힘들면 알아서 먹는 나, 칭찬한다.





2024_03022(금)

 덤벼라 이것들아

 약으로 간신히 수면시간을 채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좀 위태위태하다. 한동안 꽤나 잠잠했던 지름신도 강림했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기는 하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좀 많이 주문한 탓에 하루종일 택배가 도착해서 들여놓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도 쓸데없는 건 안 샀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저녁에 오래전에 잡아둔 지인들과의 약속이 있었는데 가기 전까지 상태가 좋지 않아 내적 갈등이 심했지만 꾸물거리는 하늘과 곧 비를 흩뿌릴 것 같은 날씨지만 기운을 그러모아 집을 나섰다. 오후에 만나 함께한 지인들과 밤늦은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시간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폭풍수다를 떠는 일이 나에게 큰 치유의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그래, 덤벼라 과거의 트라우마들아. 현재의 내가 더 세다!



2024_03023(토)

 날아가버려

 한 시간 가까이 쓰던 글이 다 날아가버렸다. 이른 새벽에 깨어 잠이 오지 않아 내내 브런치에서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겨우 쓴 글이건만. 책상 위로 올라와 마음대로 뒹굴거리던 레오가 기어이 글을 날려버렸다. 구내염이 도져서 어제 주사 맞고 온 녀석은 조금 전에도 아파서 움찔거리면서도 내가 좋다고 와서 이렇게 비비적거리고 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까짓, 날아간 글이 뭐 대수랴. 레오가 아프지 않고 이렇게 기게 좋게 책상과 키보드 사이를 점령하고 뒹굴 수 있는 게 더 중요하지. 

 지독한 악몽과 가위눌림 때문에 5시쯤 일어났다. 숨이 안 쉬어져서 고통스럽고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노력하지만 머리만 빠개질 듯 아파서 안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질러 가며 신음하다가 깨어났다. 브런치의 어떤 글(투병기+간병기)을 몰입해서 읽었다. 글에 나오던 임종 직전의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 무의식의 어떤 부분에 콕 박혀이었다가 악몽과 가위눌림으로 나타난 것 같다.

 꽤 길게, 좋지 않은 컨디션과 마음 상태에 휘둘리며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다 보니 많이 지쳐간다. 매일 쓰는 종이 다이어리 기록과 금전기록부도 쓰기 귀찮아지고 있고 이런 전투모드로 사는 것도 싫어진다. 덩달아 칭찬 일기도 그만두고 싶어 진다. 연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부글거린다. 주먹 쥐고, 이 악물고 잠들던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더 끔찍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진저리가 쳐진다. 어쨌든, 오늘까지 일기를 올리고 있는 나 일단은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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