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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Apr 10. 2024

상담 1회기 후기(2)

불을 꺼드립니다


 제가 상담받으려는 이유는 전화 상담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회생활 문제랑 가족 문제 두 가지가 있어요. 


 상담가는 전화상담 결과지를 보고 다시 나를 한번 보고는 사회생활 부분부터 이야기를 해보죠,라고 말을 건넸다. 


 그렇게 작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휴직과 권고사직을 거쳐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다시 꺼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에 있었던 사전 전화상담에서 뭐 별다른 이야기를 하겠나 싶어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몸이 부르르 떨리고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서 굉장히 당황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의 일을 최대한 상세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미주알고주알 모든 일을 브리핑하듯이 말한 건 아니었고 중요한 사건 위주, 내 감정 및 대처 방법 위주로 이야기했다. 


 의외로 상담가는 나를 곤경에 빠트렸던 당사자에 대해 조금은 거칠다 싶을 정도로 화를 내주었다. 내가 이 경험을 이야기한 모든 지인들 중에 남자친구를 제외하고 가장 격렬하게 분노해 준 사람이었다. 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나 싶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속이 후련해지고 있었다. 분명 엄청나게 상처받고 속상한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상담가 앞의 나는 왜인지 웃고 있었다. 


 본인도 대인관계에서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화를 낸다고 했다. 그렇다고 상대를 망신 준다거나 소리를 버럭 지른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앞으로 당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당신에게 갈 좋은 운을 가져가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어? 이거 신박한데? ㅎㅎ 워낙 웃음소리가 큰 나는 고요한 상담실을 뒤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조용히 웃으며 우와~ 하고 감탄을 연발했다. 언젠가 또 참을성의 한계가 오면 나도 저 말을 써먹거나 정 안되면 혼잣말이라도 해야지 싶었다.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자면 한결 안정된 상태인 것은 확실하지만 여전히 치유의 과정 중에 있고, 내면을 살펴보려는 과정 중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휴직에 이르기까지 번아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가 나아지기는 상황이 여러 차례 이어졌었다. 하나의 사건이 휴직을 촉발시킨 것은 맞지만 오직 그 사건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고도 이야기했다. 역시나 말이 많은 나는; ㅎㅎ 이제 좀 말이 시작된다 싶었지만 시계를 보니 놀랍게도 어느새 5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상담 시간은 50분!)




 상담 1회기를 마무리하며 상담가는 나에게 오늘 상담의 전체적인 느낌에 대해 물었고, 이어서 상담가의 마무리 멘트가 이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을 예로 들면서 건물에 불이 나서 불길이 치솟고 있으면 건물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큰 불을 잡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의 약물 치료라고 볼 수 있고, 큰 불이 잡혀서 건물 외곽이 보이면 내부로 들어가 남은 불들을 살피며 꺼나가는 것이 상담 치료의 역할이라고 했다. 불이 어디서 시작되어 번진 것인지, 또 불이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살피는 영역이 상담치료라고 설명하니 쉽게 이해가 갔다. 더불어 아까 그렇게까지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받아 준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내 분노의 불길을 같이 잡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아, 그런 거였구나! 


 상담 초반에 서류 작업 및 동의서 작성 때문에 시간이 간 것을 감안해서였을까 5분 정도 추가로 상담이 진행되었다. 아쉬운 1회기 상담이 끝나고 다음 상담을 약속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의 시간이 기대가 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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