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했던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내 길이 아니었고 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방황하기 시작했다
영업 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점점 시들해져 갔다. 자주 아팠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멈춤'버튼을 누르고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됐겠지만, 그 당시에는 책임감으로 이어왔던 일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내 자존심도 허락을 하지 않았기에 곧 끊어질듯한 줄을 잡고 하루하루를 버텨왔던 것 같다
가족들에게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잘 지내는'척'을 하며,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출근을 했고 늦은 밤 퇴근을 하곤 했다
매일매일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했다
상사에게는 미팅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던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내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니,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서 전철을 타고 여행을 떠났던 날
시간적으로는 여유로웠지만,
마음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날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답답한 마음을 안아 주기 위해 바다로 떠나기로 한다. 서점에 들러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산다,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홀로 바다로 도망을 쳤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었던 일정에 지쳐버린 나는, 지하철을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1시간 정도 잠들어 있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일몰이 예쁜 서해 바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바다에 도착해 카페에 앉아 윤슬을 바라보며 책을 읽었다.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고 감정을 컨트롤하다 보면, 노을이 붉어지는 시간이 온다. 노을을 만나고,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 시절, 나에게 바다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두려움과 걱정을 바다는 늘 내게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홀로 바다를 마주하고 나서야 조금은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시절, 바다와 책 읽는 내가 없었더라면 나는 오늘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가끔은 바다로 도망쳐도 괜찮아
그 이후로 나는 살고 싶을 때마다 바다로 도망쳤다
바다는 늘 나를 안아 주었고, 내 유일한 휴식처가 되었다
어떤 날은 강릉으로 도망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고, 어떤 날은 제주로 도망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앉아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였다
여전히 내가 떠나는 여행지에는 상처받았던 그때의 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한다. 한껏 움츠러든 자세로 힘없이 걷고 있는 내 모습, 웃고 싶은데 웃는 법을 잃어버린 내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쪽이 아려 오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바다로 도망칠 용기를 낸 나에게 고맙다
힘든 시기마다 바다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살아가는 일이 지칠 때면 '도망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예전의 나는, 도망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잘'도망치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안다. 삶의 무게를 버티기만 하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면 다시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잠깐 흐트러진 부분만 수정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힘이 든다. '잠깐 멈춰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앞으로의 삶은 잘 도망치고, 잘 돌아오고 싶다
나는 여전히 바다로 도망을 친다
힘든 시간과 무기력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바다로 떠난다. 도망친 곳에서는 애써 많은걸 하려고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이 온전히 쉴 수 있도록, 내 인생에 큰 쉼표 하나를 올려놓고 나만의 방식으로 잠깐 쉬어 간다
가끔은 힘들 때 도망치는 내가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다로 도망치고 난 뒤 어두웠던 마음에 작은 희망을 찾았고,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도망치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오늘의 나는 내 주변의 이들이 힘들어한다면 '힘들면 잠깐 도망쳐도 괜찮아'라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의 삶에 도망치는 게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일이 아니기에,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우리는 잘 도망치고 잘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면 도망치는 사람이 못나 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내 마음의 적신호를 알아차리고 잠깐 도망쳤다 다시 돌아오는 것,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잘 도망치고 잘 돌아와 다시 용기를 내는 일,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기에. 내 삶을 자주 들여다보고 도망쳐야 하는 순간을 잘 아는 사람이야 말로 오히려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