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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Apr 02. 2024

나의 세상은

#또다시요양원으로#알코올중독치료#생각보다다정한세상

한때 정주행 했던 드라마 "뷰티인사이드"에서는 주옥같은 대사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도 무척 좋아하는 배우였고, 나오는 대사도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 많아서 그 후로도 여러 번 재방송을 보았다.


여자 주인공 '한세계'는 주기적으로 외모가 바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변한다.

그녀는 어느 날 엄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하필 그날 그녀의 외모가 바뀐다.

바뀐 외모를 한 채,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그저 목놓아 우는 주인공을 보며 엄마는 딸임을 직감한다.

엄마는 곧 돌아가셨고, 상주임에도 상주라고 할 수 없는 채로 장례를 시작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녀가 했던 여러 대사 중에 "이제 내 세계는 무너졌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엄마가 돌아가시니, 그녀의 세계는 무너진 것 같다는 이야기...





주인공이 자신의 무너진 세계를 실감하면서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엄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동안, 나는 내 세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무너졌다고 느꼈다.

내 세계가 오래 전부터 여러 번 무너졌다고...

그래서 이제는 더 무너질 세계도 없노라고.


아빠는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요양원에서 집으로, 다시 집에서 요양원으로 가시기를 반복했다.

처음 요양원에서 돌아오셔서는 그래도 병원에서 퇴원하여 오셨을 적보다는 꽤 오랜 시간 금주하셨다.

아빠가 집에 계시는 동안 나는 늘상 불안을 안고 살았는데, 20대와 30대를 지나는 동안 십 년이 넘도록 주기적으로 꾼 꿈은 아빠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되어서 술에 취한 아빠를 보는 것이었다.


아빠가 요양원에서 올라오신 후 집에서 금주기간을 보내고 계실 무렵,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무슨 이유였는지, 내가 잠시 집에 올라갔다 내려온다고 했고 친구들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빠가 안방에 계셨고 아빠 얼굴을 본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아빠가 다시 술을 먹었다!'


취한 아빠의 얼굴을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취했을 때는 아빠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았다.


친구들에게 내려가서 그 상황을 바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무척이나 나를 걱정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늘 내 곁에는 누군가 날 위해 천사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두어 사람의 돕는 이들이  있었다.

일정한 사람이기도, 때로는 또 다른 누군가이기도 했지만 극도로 힘에 겨운 상황에서도 한 두 사람이 곁에서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간신히라도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고, 그 술은 다시 아빠를 집어삼켰다.

아빠는 술을 먹고 살아있음을 느꼈을까?

하지만 아빠는 술을 먹고 다시 죽어가기 시작했다.

또다시 원점이었다.

처음처럼 술이 아빠를 삼켰다.

아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다시 가야겠다. 그 요양원."


아빠가 스스로 짐을 쌌다.

이번에는 아빠 스스로 갈 채비를 마치셨다.

여전히 술에 취한 상태로 말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 달렸다.

휴게소를 들렀고, 다시 달렸다.

요양원에서 아빠를 모시러 나왔다.

그렇게 아빠는 또다시 요양원으로 향했다.


내 세계가 무너졌다.

나는 혼자 방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다.

교회 가는 날이면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교회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삶인지, 내 존재인지 알 수 없는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은 처음이 아니었다.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어떻게 붙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은 언제까지 흐르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무너진 나의 세계가 다시 세워지기를 하는 것인지..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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