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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Apr 09. 2024

빙산의 일각

#드디어발견한빙산#일각이전부인줄#생각보다,다정한세상

4년간 파트로 일을 하게 된 직장이 있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도 시작되었다.

코로나는 모두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나의 작은 직장생활도 더 작은 관계 속에, 존재로 머물게 하는 데에 한몫을 거들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일은 적어졌고, 관계는 더욱 부각되었다.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던 동료는 나를 싫어했다.

그에게는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묻고 대화를 시도하기를 수차례.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직의 분위기나 사람의 기분을 알아채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훈련이 되어있었다.

그것을 나와는 다른 별개의 문제로 여기기까지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한 사람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그가 기분 나쁜 말과 시선을 던지고,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등의 일들이 반복되었다.

먼저 말을 걸고, 그를 향해 수없이 친절을 베풀었다.

음식을 해주고, 선물을 주고, 마음을 챙겨주었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 년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될 무렵,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나는 폭발했다.

그리고 나의 빙산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밥도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토하기까지 할 정도로 내 안에 무언가로 인해 구역질이 올라왔다.

잠을 자고 싶었으나, 눈물 아니면 분노로 내 안에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


지금도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따스함도 그리움도 아니다.

여자가 엄마로 살아가면서 가장 그리워지는 대상은 엄마라던데...

그 말은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엇을 해도 나에게 웃어주지 않던 엄마. 할 일을 알아서 하고 아무리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칭찬 한번 온전하게 해주지 않던 엄마.

사춘기 시절 엄마아빠 때문에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나의 울부짖음 앞에서도 안아주지 않았던 차가운 엄마.

반복되는 엄마아빠의 갈등과 심각한 부부싸움 앞에서 무서워 떨 때마다, 자식들을 불쌍하게 여겨서 참기 보다 엄마의 혈기 그대로를 나와 동생 앞에서 아빠를 향해 쏟아냈던 엄마.


엄마가 된 지금의 내 나이, 그때 그 시절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씩씩거리는 분노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삶을 차마 놓을 수 없어서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말했지만, 나는 엄마가 결코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기운이 넘쳐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엄마는 결코 아빠에게 지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상황을 모면하고 수없이 가족을 위협했던 위기의 순간을 그냥 지나갔을 법도 한데, 엄마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억울하면 소리쳤고, 아빠가 때리면 덤벼 들며 맞섰다. 젊은 시절 엄마와 아빠는 짐승처럼 싸웠다. 그 사이에서 나와 동생은 너무 두려웠다.






어른이 되고 나니 화가 났다.

엄마가 되고 나니 더욱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돌도 되지 않았을 무렵에 나를 때려서 기저귀를 떼게 만들었다고 했다.

내 아이의 돌도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식탁 아래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렇게 작은 아이를 때린다는 것이, 그래서 기저귀를 결국 떼게 만들었다는 것이 화가 나고, 슬펐다.


엄마에게는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로 인해, 엄마의 삶에 대한 후회와 원망, 분노가 가득했겠지만, 그 분풀이의 대상이 나였을 뿐 그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사과도 내게는 없었다.


엄마의 기분을 맞추어주기 위한 어린아이시절의 내가 안쓰러웠다.

엄마의 집안일을 돕고, 동생을 챙기고, 숙제와 공부를 알아서 해내는 나의 어린 시절이 슬펐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고, 내가 어떤 장난감을 갖고 싶은지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의 눈에 나는 "욕심 많은 년" "싹수없는 년"이었다.

수없이 들었던 엄마의 욕에 화가 났다.





나의 빙산을 발견하고 나는 동료에게 일방적으로 맞추어 주던 나의 모든 마음과 행동을 멈추었다.

그 시간 후로 더 이상 잘 지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속 엄마의 모습과 내가 한걸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집중해 보기로 했다.

잠시 동안 내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 후로 동료와의 관계는 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내가 그토록 잘 지내기 위해 애쓸 때도 비슷했다.

나를 향한 그의 미움은 그의 것이다.

그의 마음을 내가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의 존재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도 그의 사정이 있겠지.

나도 나의 사정이 있듯.


더 이상 조바심이 들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해야 할 것처럼 기분 나쁜 책임감으로 나를 내몰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여전히 50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이제 70이 다 되었는데도 말이다.

엄마를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엄마와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 나를 내가 보듬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나를 떠나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선택을 한 엄마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엄마의 마음은 엄마의 것이다.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자 수없이 애썼던 나의 어린 시절을 다독이고 부모의 삶은 오롯이 그들의 것임을 나에게 기억시켰다.


내 아이들에게 내 삶의 괴로움을 묻고 전가하지 않듯, 부모의 삶은 부모의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엄마와 아내로 잘 살아가면 그만이다.

5월이 가까워 온다.

올해 5월은 또 얼마큼이나 흔들릴까.


엄마와 아빠를 떠난 나의 삶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다정하던데, 그럼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나의 5월은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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