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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Mar 26. 2024

A beautiful mind

#존내쉬#정신병#알코올중독#아빠의 지하실#생각보다, 다정한 세상

존 내쉬. 프린스턴대학교 수학박사. 1994년 노벨 경제학상


영화 A beautiful mind는 수학자 존 내쉬의 인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존 내쉬는 프린스턴대학 수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내성적이면서도 독특한 성격을 가진 천재로 등장한다.

친구들이나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잘 맺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내며 학교 학생뿐 아니라 교수 등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알리샤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를 줄곧 따라다닌 정체 모를 인물이 셋 있다.

그 정체 모를 인물 셋은 존 내쉬에게만 보이는 가상의 인물이었고, 그의 가족과 인생을 위험에 빠트린다.

정신병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아가던 그는 약으로 인한 부작용 (정신이 선명하지 않고, 집중력이 흐려지는 등)때문에 서서히 약을 먹지 않는다. 다시 발병한 그의 정신병은 그를 현실에서 떠나 자기만의 세계에 가둔다.

그런 그를 일생 동안 떠나지 않고 병을 직시하고 극복하게 해 준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실제로도 그의 아내는 매우 지혜로웠다고 평가를 받는다.

영화 내내 그의 아내는 남편의 병에 눈물짓고, 가슴 아파하지만 병을 바로 보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 중반부에 주인공 존 내쉬가 (약을 먹지 않아) 정신병이 다시 발병해서 자신만의 아지트인 오두막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아내가 발견한다.

그의 아내는 놀람과 동시에 두려움과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 장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격한 감정이 터져 나왔다.

큰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숨을 거칠게 쉬면서 울음을 삼켰던 기억이 난다.

내 눈물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 슬픔과 절망은 내 안에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작은 빌라에 살았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일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에 공장을 직접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었다고 했지만, 내가 태어나고부터는 줄곧 가난한 집을 보았기 때문에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아빠는 술을 위해 살았고, 술로 인해 살았다.

당연히 가족의 생계는 엄마에게 넘겨졌다.

서울에 살다 경기도로 이사를 했고, 다시 또 이사를 했다.

집은 점점 작아졌다.


아빠의 알코올중독 치료가 시작될 무렵에는 작은 빌라 3층에 살았는데, 그 빌라에는 지하실에 각 호수마다 작은 창고 같은 공간이 하나씩 주어졌다.

그 창고에는 집집마다 필요하지 않은 짐을 넣어두거나 하는 각자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술을 먹지 못하자 견딜 수 없던 아빠가 병원을 탈출했던 일이 있었다.

환자가 사라졌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나는 곧장 아빠를 찾아갔는데, 아빠가 발견된 곳이 바로 그 지하실이었다.


영화 존 내쉬의 오두막을 보면서 나는 아빠의 지하실이 오버랩되었다.


지하실에는 아빠가 숨겨둔 술과 오래된 음식들이 있었다.

유통기한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식빵과 작은 과자 조각들, 음식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장 비닐.

아빠의 물건들과 담배, 쓰레기인지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아빠의 짐들..


병원을 탈출했던 아빠는 그곳에서 술과 빵을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현실은 여전히 펼쳐져 있었다.

나는 갓 대학생이 되었던 때였고, 수업을 받아야 했다.

아빠는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살아야 하는 현실이 무거웠다.

밤에 잠이 들면서 다시 눈을 뜨고 싶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은 몸살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한으로 덜덜 떨며 밤새 끙끙 앓았다. 몸이 아팠던 것인지 마음이 아팠던 것인지, 그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렇게 밤을 새우도록 앓고 나서 아침이 되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약 없이 온통 꼬박 내 몸으로 앓아내야 했던 몸살.


내게 주어진 삶이 그 몸살처럼, 어떤 약도 처방도 없이 그저 맨 몸으로 앓아내야 하는 것 같았다.

힘들었다.

힘에 겨웠다.

무겁고 무거웠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다.

잠시라도 즐겁고 재밌고,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죄책감이 따라왔다.

집과 가족이 이런 형편인데, 내가 웃고 떠드는 것이 죄스러웠다.

이 죄책감은 나를 자주 따라다녔다.

나 스스로 나를 문제아라고 부르며, 가족의 현실을 곧 나 자신으로 여겼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슬프고 화가 났다.





아빠가 처음으로 입원한 알코올중독치료 병원은 너무 비쌌다.

알코올중독 치료는 병원비뿐 아니라 간식 비용, 물품구입 비용이 별개로 더 든다.

아빠의 치료비는 내가 많이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대학시절 나는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다.

아빠는 처음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3개월 후 퇴원했고, 어마어마한 분노와 살기를 가지고 집에 왔다.

그날의 아빠는 온 가족에게 폭탄 같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예상대로 다시 술을 먹는 삶으로 돌아간 아빠는 다시 이전처럼 일상을 살 수 없는 지경에 금세 이르렀다. 알코올중독은 중독자의 몸 안에서 술을 분해시키는 요소가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술을 먹고 나서 술이 깨지 않는다.


밤에 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술에 취해 돌아오는 아빠를 여러 번 발견했다.

아빠의 방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술 냄새를 뛰어넘는 악취였다.

아빠는 또다시 술 때문에 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아빠의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방에 있는 요양원 같은 시설이었다.

멀더라도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치료비가 저렴한 곳.


한 곳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요양원으로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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