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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 moon Mar 19. 2024

갖고 싶던 장난감

#마루인형 #미미 #세상은생각보다다정하다

기억 속 가장 어린 나이는 아마도 6,7살인 것 같다.

더 어릴 적 기억은 생각을 열심히 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마루인형이 갖고 싶었다.

엄마나 아빠에게 갖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과 나는 이렇다 할 장난감이 없었다.

사진으로는 막 앉기 시작할 무렵 곰돌이 인형 하나가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에 나는 장난감이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게 뭐 큰 문제라도 될까 여겼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동안 내 아이의 모습 위로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작고 어린 나에게 연민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갖고 싶던 장난감.

먹고 싶던 군것질.

놀고 싶고, 하고 싶던 일들이 마음속에서 계속 발견되었다.


어느 날은 슬펐고, 어느 날은 화가 났다.

나의 어린 시절이.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의 시간과 나를.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을 거다.

방에 앉아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한 적이 있다.

누구에게 기도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거기 어딘가에 누가 계시다면 도와달라는 외침이었다.

두 손을 어찌나 꽉 쥐고 있었던지 피가 점점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도 내가 꽉 쥐고 있던 두 손이 기억난다.


아빠가 술에 취해 온 저녁에는 내가 잠 못 이루고, 아빠가 잠들기까지 기다렸다가 잠에 들었다.

엄마를 때릴까 봐 무서웠다.

나는 아빠가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아빠가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기억이 있는 모든 순간에 싸웠다.

그 싸움은 대부분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빠는 꼭 술에 취해 있었다.

아빠는 술에 취하지 않으면 말이 없었다.

그러면 엄마는 또 술 안 먹고 말도 잘 안 하는 아빠가 불쌍해 보인다며 술을 사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아빠의 중독에 기여한 바가 크다.


아빠의 폭력은 언제나 심각했다.

경찰이 오거나 동네사람이 와야 끝이 났고, 누구 하나는 피를 봐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가 일찍 잠에 들었다.

아무 다툼도 없었다.

기적 같았다.

나도 안심하고 잠들었다.


잠들었다가 어렴풋하게 들리는 소리에 깼다.


퍽, 퍽, 쿵!


심장이 갑자기 쿵쾅거렸다.

눈을 들어서 옆을 보니, 아빠 손에 이끌려 엄마가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나오고 있었다.

엄마는 기절했다.

아빠는 기절한 엄마를 마당에 눕혀놓고 찬물을 끼얹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오랜 시간, 남자의 큰 목소리를 들으면 불안했다.

다행히 남편은 목소리가 크지 않다.

나의 불안이 발견되고 나 스스로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난 극심하게 마음의 경련, 몸살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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