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아닌 소개팅을 하고

변함은 없었다 말할 수 있으니 이제는 널 보낼 수 있을까

by 일요일은 쉽니다


나 오늘 소개팅 아닌 소개팅을 했어

내가 이곳으로 돌아와 만나려 한 사람 중에 하나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거든

설레거나 그런 건 없었는데

되게 긴장되더라

네가 아닌, 친구도 아닌

다른 남자랑 밥을 먹는다는 게 말이야

그냥 별거 아닌데, 난 익숙지가 않아서


근데 오늘 하필 머리도 이상하고

비비크림도 안 발리고

너무 안 예쁜 거야

예뻐 보여야 하는 날인데

그러게 말이야

나 너 말고 다른 남자 만나는데

잘 보이려 하고 있더라


메뉴 선정부터 어려웠어

너랑은 너무 편했기 때문에

잘 통했기 때문에

우리 입맛도 비슷했으니까

여기? 저기! 하고 잘 들어맞았는데

캠퍼스에서 만나 발걸음을 옮기는데

순간 머리가 하얗지는 거야

아... 어디를 가야 하지

뭘 먹어야 하지



그리고 나 밥 반도 못 먹었다

너무 긴장했나 봐

기억나지?

너랑 처음 만났을 때

그때도 밥을 많이 못 먹었잖아

너무 긴장돼서 얹힐까 봐 말이야

나 밥 좋아하는데, 밥도 많이 못 먹고...


친구가 어색해서 어떻게 만나느냐 했는데

그냥 늘 하던 듯 재잘재잘 떠들었어

그 사람도 긴장을 했나 봐

중간중간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시더라

귀여웠어

너랑은 다른 모습이잖아

넌 처음부터 되게 자신만만했는데

이 사람은 긴장된 게 보이길래


내가 질문도 많이 하고 말도 많이 하고

그 사람 밥 다 먹을 동안 난 반도 먹지 못한 채

재잘재잘 쫑알쫑알

소개팅으로 만난 거 아니니까 뭐

말 많다고 정신없다 하면 어쩔 수 없지

지금 덜 어색한 게 낫지 이러고 말이야

근데 되게 잘 웃어주는 거야

너도 그랬었나?

널 보며 웃던 내 모습에

네가 가려져 기억이 나질 않아서



그리고 정말 착한 사람 같아 보였어

여자랑 둘이 있는 게 익숙지 않은 사람 같았고

이 점은 참 좋았는데

여자랑 친한 사람은 싫더라고

그리고 잘생겼어

키는 작아, 나보다 조금 컸나?

그러고 보니 맞다, 우리 키가 완벽하다고

그러던 날들이 있었는데


되게 자상하더라

사실 너보다도 더

참 별거 아니었는데

쓰레기가 생기니까 자기가 받아서 버려도 주고

멀리서 차가 오니까

내 가방을 살짝 당겨 길 안으로 자리를 바꿔주고

그 차 되게 멀리 있었고 자리도 넓었는데 말이야

작지만 소소한 배려가 고마웠어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가 되나 봐

칫솔 바꾸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이상해

근데 착하고 귀엽고 고맙더라

불편해할까 봐 눈을 잘 안 마주쳤는데

옆에서 날 바라보는 게 느껴지면

따뜻하고 고맙더라

좋은 사람이더라



또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

우리는 만날 핑계가

딱 한 번만 유효했던 사이라

너를 만나기 전이었으면

내가 또 밥 먹자고 연락할 텐데

너를 만난 후라서

이제는 그렇게 못할 거 같아


되게 신기한 인연인 사람이야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간 만난단 말처럼

같은 학교를 갈 뻔했다 엇갈린 사람을

결국 학부 시절 보내고

대학원에서 만나게 되더라

신기하지

한 번의 연으로 끝날지

또 연락을 할지 잘 모르겠어

그냥 자상했던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근데 너 아닌 다른 사람과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다니

이제 널 보낼 수 있을까

변함은 없었다 말할 수 있으니

이제는 널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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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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