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하지 말자, 하지 말자
나 오늘 조금 힘들어
사실, 요즘 계속 그랬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편으로는
불확실함을 하나의 기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는 거 같은데
이 시간이 가면 또 갈수록 한편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모르겠어서
그래서 요즘에 계속 마음이 좀 그랬어
산책할래? 라는 말로 대신 전하던
예전에 그 날들처럼
“전화할까?”
“응, 전화하자”
생각해보니까, 그러게
회사에 다니면서도 제일 혼란스러울 때
내 길을 찾을 수 있게 옆에서 응원하겠다던, 또 함께하겠다던
한 걸음도 떼지 못할 거 같을 때 옆에서 같이 걷겠다던
우리가 했던 마지막 약속들을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채
“자고 있었어?”
“아니, 안 자”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그때 네가, 아무런 갈피도 못 잡고 있던 내게
네 인생의 숲은
나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 했었는데
그래서 일이든, 꿈이든, 회사든, 길이든
모두 다 그 숲 안에 들어가는 나무들이라 했었는데
“더 잘래?”
“아니, 너랑 얘기할래”
보통 날과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던 날에도
갑자기 막막해서 숨이 턱 하고 막혀올 때면
네 번호를 누르고 잠시 후 너와 연결이 됐을 때
다시 숨이 쉬어지고는 했는데
한때 제일 먼저 걸고, 제일 우선 걸고, 제일 편하게 걸던 번호가
언제부터 누르기 낯설어진 것인지
“왜 더 안자구”
“목소리 듣고 싶어서”
생각해보니까, 그러게
다행인 거 같기도 해
지금 기억해보려 하니까
네 번호가 더는 떠오르질 않거든
“잠만보인데”
“잠만보지”
나는 끝끝내
한 번도
다시 누르지 않았으니까
너보다 독하게
“힘들었지?”
“아니, 안 힘들었어”
있잖아, 나 진짜 길을 잃은 거 같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이렇게 무작정 걸어가도 되는 건지
되게 괜찮은 척하려 하는데
되게 괜찮지 않아
마음이 복잡해, 아니 착잡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하나도, 아무것도 파악이 안 돼
“그럼 보고 싶구나?”
“당근, 보고 싶지”
전에는 네가 옆에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줬는데
따뜻한 그늘이 되어줬는데
가야 할 때를 알려주고, 쉬어야 할 때를 알려주고
웃게 해주고, 응원해주고, 다독여주고, 일으켜주고
“보고 싶어, 많이”
“나도 그런데”
내가 길을 잘 못 찾아서
맨날 가는 데만 가고, 맨날 가는 길로만 가는 거 넌 다 아니까
행여나 길을 잃어 고생할까 봐
항상 데려다주고는 했는데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해”
“무슨, 그런 말 하지 마”
근데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길을 잃은 거 같은데
아예 방향을 모르겠는데
모르겠으면 무작정 걷자는 마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는데
“곧 또 보면 되지”
“그러게, 그러면 되네”
근데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나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거 같은데
나 계속 같은 곳에서 헤매는 거 같은데
“내가 다시 가야겠네”
“그래, 다시 와, 얼른 와”
근데 너는 어디로 간 건지
너의 목적지는
내가 아니라 누가 되어버린 것인지
“전화할래?”
응, 전화하자
그래, 전화하자
나 물어볼 게 많단 말이야, 되게 많아
잘 지냈는지, 날씨는 어떤지
회사는 적응했는지, 사람들은 좋은지
야근도 많이 하는지, 주말에는 그래도 좀 쉬는지
옛 친구들을 만나니 어떤지, 결국에 이사하기로 했는지
아픈 데는 없었는지, 건강히 잘 지냈는지
“전화할까?”
내 생각이 났는지
내 웃음이 떠오르지는 않았는지
내 사진을 꺼내본 적이 있는지
내가 가끔 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내 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 걱정이 되지는 않았는지
내 얼굴이 그리워지고는 했는지
내 목소리를 잊지는 않았는지
“응, 전화하자”
하루의 시작과 하루의 끝에서
쫑알쫑알 이어지던 내 수다가 필요하지는 않았는지
바빠도 밥은 챙겨 먹으라고
걱정 섞인 내 잔소리가 허전하지는 않았는지
이어지는 야근에 야근 후 비몽사몽으로 목소리가 다 잠긴 채
눈도 못 뜨면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맴돌지는 않았는지
“더 잘래?”
“아니, 너랑 얘기할래”
나는 이미 진작에
좋은 사람을 만나
다 잊고 잘 지낸다는
말도 안 되는 그 소식을
너는 믿고 있는지
“왜 더 안자구”
“목소리 듣고 싶어서”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나란 사람을 알아가고, 옆에 두었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그 소식을
믿기로 했는지
“보고 싶지?”
“그럼, 보고 싶지”
나를 그렇게도
몰랐는지
나를 그렇게도
모르는지
“전화할래?”
아니
하지 말자
하지, 말자
추천 음악. 김동률, “그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S4ctrE4W2a4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