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집을 사고 싶어
부동산 웹사이트에서 경기도 외곽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들을 기웃거리거나, 서울 메트로 2호선 일대의 여러 빌라 매물들을 뒤적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급하게 고르다보니 더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한 2년 쯤만 돈을 더 모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려나 싶지만, 뭐 그때 되면 주택담보대출 범위(LTV)가 늘어나서 대출이라도 많이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아무리 생각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통근의 질이었다. 화정에서 강남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지하철을 타는 것. 지하철을 타면 1시간 40분이 걸린다. 사실 시간은 그렇게까지 중요치 않다. 문제는 역세권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야하고, 지옥철을 견디고나서도 한 번 갈아타야 하며, 어떤 역에서든 내리더라도 15분은 다시 회사까지 걸어야 하는 문제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었던 것뿐만 아니라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런 기준으로 내 집을 고른다는 건 나답지 않은 행동이 분명했다. 세입자의 설움을 덜고 자기 명의의 재산을 확보해 주권을 지키는 일이라고 아무리 포장해도, 실제 내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 단위의 불편함을 이렇게까지나 감수해야 할 문제인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게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주도권을 산들 제로섬은 아닐까?
그렇게 누군가 집을 사고, 집값이 그래서 오른다는 뉴스들을 남의 일처럼 본지 며칠이 지났다.
"있잖아. 나 지금 계약금 넣고 왔어."
막역한 중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얼마 전에 우리는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대한 얘기를 얼핏 하긴 했지만, 수일 내에 이렇게 둘 다 부동산을 뒤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친구는 전화 통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미친듯이 올라가고, 아파트 매물이 하루가 멀다하면 수 십 여개씩 사라지는 이 흐름 속에서 자신과 남편도 아파트를 사야겠다고 선언했었다.
생각보다 친구의 실행력은 놀라웠다. 그런데 정말 더 놀라운 것은 친구가 선택한 아파트도 역시 화정동 부근이었다. 친구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계산을 머리로 굴렸을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는 화정동에서 지하철로 한정거장 떨어진 위치인 대곡역에 GTX-A 노선이 개통될 예정이어서 화정지구에는 나름의 간접적인 투자 호재도 있던 터였다.
통화를 끝내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도 고양시에 다녀 왔었는데, 왜 결정하지 못했을까? 내가 용기가 없던 것일까? 아니야, 친구와 나의 상황과 입장이 다르기에 결정의 생김새도 다를 수밖에.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냈다. 무심코 브라우징한 네이버 뉴스 화면에는 우리들을 저격하는 듯한 헤드라인이 가득했다.
2030 패닉바잉.. 집값 고공 행진 언제 잡히나?
정신이 혼탁했다. 실은 나도 집을 갖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지켜본 2030의 주택 구매 열풍은, 신문의 헤드라인과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이 변화무쌍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지만 자기만의 자산을 갖기 위해서 이게 시행착오라고 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이미 집이나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잠식하고 있는 자본주의 영토 싸움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늦게나마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덤벼 들었다.
자신들보다 열댓살 많은 어르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동산 정보 속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때로는 부족하게 나마 그들을 흉내내 보았다. 때로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투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얻은 밀레니얼 만의 정보력을 참고해 제 자신만의 자리를 구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비단 어디 나도 한 번 부자가 되어보자 하는 일확천금을 노린 열정으로 폄하될 일은 아니었다. 이러다가 내 자리가 한 곳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에서 시작된 생존 본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이 시절을 두고 '패닉바잉' 이상의 '생존바잉'의 사연을 조명했던 언론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청년들에게는 패닉바잉 보다도 더 큰 문제는 패닉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부동산 투자도, 주식도, 코인도, 대출도 현금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20대 30대 들에게나 가능한 값비싼 사회적 문제이니까.
창궐하는 코로나와, 난데없는 자금유동성으로 넘실대는 주식 열풍과 코인 열풍에, 그리고 미친듯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과 빈부갈등에, 정말 모두가 정신없는 2020년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