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란 Oct 30. 2022

#8. 우리집과 내집

나도 집을 사고 싶어


내집 마련의 즐거움

 

고양시를 떠올리자 마자 그 부근의 부동산에 직접 찾아갔다. 기분이 묘했다. 내 이름으로 집을 알아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집을 알아볼 때 유념해야할 점들에 대해서 이미 인터넷에서 숱하게 검색을 하고 찾아갔지만, 어쩐지 어린 학생이 아빠 정장을 걸쳐 입은 듯 어딘가가 어색했다.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을 때는 괜히 어리숙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짐짓 침착한 척 구는듯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것을 속사포로 물어보는 학생으로 다시 돌아갔다.


다행히 부동산 업자가 보여준 집 상태는 훌륭했다. 방이 2개가 딸린 20평 아파트로, 햇살이 비치고 관리가 잘 된 집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베란다의 페인트가 벗겨지긴 했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뻥 뚫린 베란다 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나는 작은 부엌에서 갓내린 블랙티 한 잔을 들고 운동장을 내려다 보며 날씨를 가늠해보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역삼동 원룸집에는 바로 옆에 소방서 주차장과 식당이 몰려 있던 게 생각이 났다. 나는 한 번도 역삼동 원룸집의 창문을 완전히 열어 햇살을 맞이해 본 일이 없다.


매매 호가 2억 2천. 1억 6천의 전세계약이 딸린 물건이었다. 마침 부동산 사장은 집주인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서 시세 대비 상당히 저렴하게 나온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같은 단지내 같은 평수의 아파트에 전세를 끼지 않은 매물이 2억 6천 정도에 호가가 오르내리고 있었으니 그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내가 이 집을 인수하면 지금 당장 들여야할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세금까지 어림 잡아도 7천 만원 정도로 계산됐다.


- 7천만원? 7천만원 만 있으면 내 명의의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기분이 이상했다. 7천만원은 집을 사기에 큰 돈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 당시 내게는 큰 돈이었다. 어느새 내가 어른이 되어, 어떤 재화를 사기 위해 이렇게나 큰 돈을 쓸 수 있다니. 내가 정말 집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살면서 처음 해본 생각이었다. 돈이 있으면 원피스를 사 입을 수 있고,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고, 유럽 여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내가 내 돈으로 '집'을 '산다'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의 얘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마음 속에서는 자꾸만 계산을 해댔다. "방이 두 개네? 이왕이면 방이 세 개면 좋을텐데." 전세로 겨우 원룸에나 살고 있으면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운운하며 투자 물건을 고르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복도식 아파트가 아니라 계단식 아파트를 좀 더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이제 막 내가 눈을 뜬 자본주의의 경고가 귀찮게 귓속말을 걸었다.


-고양시는 오랫동안 아파트 가격이 움직이질 않았잖아.


-아무리 GTX-A 노선이 곧 개통한다지만 솔직히 언제 완공 될지도 모르는 노선만 믿고 결정할 수 있겠어?


-덜컥 샀다가 하락장이 올 수도 있잖아



내게는 실은 아파트, 하면 떠올리는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1996년, 우리 가족이 경기도 고양시 화정지구의 아파트에 처음 입주했던 그날. 생애 첫 아파트를 갖게된 엄마와 아빠의 상기된 표정과 설렘 같은 것들이 이삿짐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새집을 채웠던 날이었다. 그때 이제 막 8살이던 나는 어쩐지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 했다. 그전에 우리집은 몇 번의 셋방을 전전했지만 모두 단층 집이었다. 그러니 위로는 20층이나 되고 앞으로는 경비실이 딸려 있는 이 희한한 '아파트'라는 건물을 조금 멀리서 한 번 바라보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정신없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조용히 1층 복도를 지나 아파트 입구를 나섰다. 어느새 까만 밤이 도착해 있던 시간, 사방은 노란색 불빛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별들은 어디서 어떻게 빛나는 것일까? 땅에서 가장 가까운 1층에서부터, 저 위 달 아래 까지 세로로 20층까지. 별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올라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 모든 층들에서 노랗게 밝혀져 있던 비상구 계단의 불빛이었다. 


비상구 불빛의 양옆으로는, 저마다 어제 오늘 입주를 마쳤을 가구들의 형광등 빛과 베란다의 노란 등 빛들이, 또 다른 별처럼 밤을 수놓고 있었다. 글쎄 8살이 되도록 산도 가보고 계곡도 보고 바다도 보았지만 이런 장면은 내게 결코 본 적이 없는 세상이었다. 나는 늘 경기도 외곽지역의 단층집에 살았으니까. 그런 내 눈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층 주택에 모여사는 덕분에 만들어지는 이 풍경은, 처음 보는 도시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무서웠다. 나는 그냥 집 앞에 나왔을 뿐인데, 다시는 우리집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옆과 앞의 다른 아파트들도 그리고 그 뒤의 아파트도 모두, 똑같이 네모낳고, 똑같이 반짝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집이 1층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어린 날의 내가 아파트 단지에 가득한 불빛들에 놀라워하고 감동했듯이, 이미 어른이되고 훌쩍 불혹과 육순을 넘긴 이들도 아파트의 야경이 주는 매력에서는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곤 한다. 한강변의 모 아파트가 건너편 한강변의 아파트들의 야경을 바라보며 만끽할 수 있는 황홀감이나, 경기도 광교의 어느 호수 공원이 뿜어내는 홍콩 빅토리아 항의 그것도 부럽지 않다는 야경 모두 수많은 이들의 욕망과 질투를 자극한다.


"딸! 거기서 뭐해?"


아름답지만 무서운 불빛들에 둘러싸인 나를 아빠가 불렀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 가족의 새로운 집으로. 어떤 누군가의 집과도 비슷하지만, 분명히 우리 만의 역사와 미지의 연약한 약속과 달콤한 희망이 존재하는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원래 살던 단층집에서 처럼 나란히 누워서 하룻밤을 보냈다. 네 기억에 우리 가족이 가장 마지막으로 나란히 한 방에 모여 잠을 잤던 밤이었다.



우리집과 내 집


그래 한강뷰는 언감생시미, 야경뷰도 모르겠고 호수뷰도 모르겠다. 그냥 화정지구에 내 집을 마련하고 거기서부터 나의 독립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제보니 내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없잖아. 살기도 좋은데 비싸지도 않다? 정말 '내집마련'에 최적화된 동네 아닌가 내게는 지금 당장 나만을 위한 단짝이 필요하지, 누구나 원해서 내게는 도통 시간을 줄 수 없는 셀러브리티를 원한 게 아니었으니까.


- 여긴가?


- 그래 바로 여긴가?


- 그 대단하다는 서울과는 먼 곳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내 것이라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계속 계속 헷갈렸다.


- 나는 정말 나로 살고 싶어서 집을 사는걸까?


- 어쩌면 나도 여러 가지 별들 중에 하나 정도는 가져야 안심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두 다 바보 같은 생각들이었다. 불현듯 내 나이였을 엄마가 그리웠다. 집이 과연 좋은 투자처이든 좋은 통근지이든 크게 상관없이, 가족과 함께 따뜻한 내 집 하나를 꿈꿨던 30년 전의 나의 젊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집이라는 것은 어쩐지, 함께 살고 싶은 가족과 함께 꿈꾸듯 골라야 만이, 순도 깊게 들뜨고 즐거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 07화 #7. 한강과 먼 곳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