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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뱃속에 CCTV가 있었으면 좋겠어

by 로란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임신 6주차에 들어서였다.


그날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왔다.

심장 소리를 들은 그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태아는 잘 자라주고 있구나.


사실 요며칠 일상이 쉽지 않았다.

일단 내 몸을 내가 이길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일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임산부의 미래를 걱정하며, 나의 임신과 출산이

나의 사회적 입지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글을 써보기도 했지만

그 글을 올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임산부의 몸은 아웃도어 브랜드 마케터의

퍼포먼스를 제대로 낼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걸.


나 같은 경우는 미세하게 지속되는 두통과,

깊은 잠에 빠지기 어려워 하루 종일 피곤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증상은,

뭘 먹든 안 먹든 전반적으로 속이 매스껍다는

아주 야속한 상황이다.


다행히 나 같은 경우는

아직 헛구역질이나 토를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상시 속이 불편하고 얕은 강도로 어지럽다.


예전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에버랜드에 갔는데, 그날 바이킹을 타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마침 줄 서는 사람들이 없었던 덕에

2번을 연달아 탄 적이 있다.


하지만 2번을 타니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지금 딱 그때 그 느낌이다.

그러니 회사에서 속이 울렁거리는 상태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자면 며칠 전

우리 팀장님이 촬영 업무에서 제외해 주신 혜안에

그저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

외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네, 부산이며 평창이며 먼 길로 출장을 가서

모델들과 소속사를 케어하며 하루 12시간 이상

밖에 서 있는 일은 역시 어렵겠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이런 임신 증상이 사라지는 게

나를 더 괴롭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상하게 어떤 날은

배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고

머리도 아프지 않고, 몸도 가벼울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때면 좋은 게 아니라 덜컥 겁이 난다.


내 뱃속의 아이가 무슨 일이 났나?


임신 초기는 위험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온 터였다.


딱히 조치를 취할 수 없는 화학전 유산이

많은 시기라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시기에

내 임신이 이상이 없다는 걸 느끼는 것은

오로지 내 몸의 어딘가가 불편해야 만 가능했다.


그래서 솔직히 임신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편한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아가야. 너 거기 있는 거니?


뱃속에 CCTV를 설치해서

내 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론 머스크는 아무래도 여자가 아니라서

그것부터 개발할 생각을 못 한 것 같다.


손꼽아 기다리던 진료날,

다행히 아기의 심장 소리는 우렁차게 들렸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은 조심해야 할

단계라는 걸 강조하기를 잊지 않으셨다.


같은 날 산부인과 진료를 하고 나와

안도하는 마음을 안고 태아 보험 상담을 받았다.


태아 보험이란,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각종 의료 진단과 수술에 대해 보장하는 보험이다.


어떤 아기들은 몸무게가 적게 태어나거나

두상 교정이 필요한 상태로 태어나기도 한다.

드물지만 입천장이 갈라져 있을 수도 있고 또

손가락이 하나 더 있을 수도 있다.

보험은 그래서 필요하다.

금전적으로 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아기들은

내가 모르는 이유로 소아과에 가거나

때로는 응급실에 갈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보험 영업인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 잠시 애를 먹었다.


무고한 천사 같은 영혼들이

혼란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게

타고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부터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러내지 않았다면

아주 하얗고 깨끗한 구름 위에서

쌔근 쌔근 쉬고 있었을 영혼이었을텐데.


곧이어 이 모든 설명을 마음 졸이며 들었을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경험한 엄마들과 아빠들의

수많은 뒷모습이 떠올랐다.


하나의 생명이 인간들에게

다음 세대를 잇는 씨앗으로 찾아와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

셀 수 없이 찬란한 희망과 사랑은 물론,

그에 못지 강인한 용기와 마음 졸임이 따른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씩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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