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간
요새는 사람이 하루에
이렇게 많이 자도 되는 걸까?
정말로 걱정이 될 만큼 잔다.
주말에는 8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나서
아침 밥을 먹고 또 두 시간을 자고,
조금 쉬다가 또 두 시간을 잔다.
그리고 금방 저녁이 되면
저녁을 먹고 다시 8시간 통 잠을 잔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내 몸은 오로지 잠을 원한다.
평일에는 회사에 있으니 억지로 버티지만,
속이 울렁거리고 무기력함이 몰려올 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여성 휴게실로 향한다.
다행히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시설도, 문화도, 임산부에게 배려가 깊은 편이다.
얼마 전에는 회사에서
임신 축하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
아주 커다란 상자에
내 돈 주고 샀으면 지출이 꽤나 됐을,
여러가지 유용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임산부들의 기본 교과서와도 같다는
삼성출판사의 임신 출산 대백과와 함께
전자파 방지 블랑킷이라든지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 티 같은 허브 티
기프트 박스가 들어 있었다.
손목 밴드도 있었는데,
훗날 저걸 써야할 만큼
내 손목이 약해지는 날이 오겠구나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루이보스 티는
친한 친구가 임신 선물로 보내줘서
한 박스 더 갖고 있기도 하다.
임산부는 커피도 최대한 마시지 말아야 하지만
의외로 피해야 하는 허브티가 많다.
홍차를 비롯한 녹차 계열의 차들이나
자스민 티, 라벤더 티 모두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루이보스 티는 괜찮다고 한다.
카페인이 없고, 마침 양수를 맑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여러 모로 좋은 차라서 먼저 임신을 해본 나의 친구가 신경써 보내준 것 같다.
그러나 슬프게도 별다른 맛이 없는 게 단점이다.
이것 또한 의무적으로 마시게 될지 모른다.
솔직히 요새 너무 힘들다.
남편이 없을 때 집에서 두 번이나 울었다.
내 몸을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서글퍼지는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주변에 먼저 임신한 사람들이 조언하기를,
애써서 임신 초기의 고단하고 무기력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냥 그런 시간이 왔구나, 순리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몸을 맡기라는 뜻이다.
얼마 전에 정말 일주일에 단 하루
몸이 참 가벼운 날이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그날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자발적으로 야근을 했다.
임산부는 연장 근무 신청을 올릴 수 없으니
기록에 남지 않는 야근이었다.
지난주 내내 사실 몸이 안 좋아
하루는 연차를 내야 했고
나머지 날들도 몽롱한 상태였던 상황이라
내 손에 주어진 어떤 일도 내 마음에 흡족하게
해내지 못했던 와중이었다.
그런데 오로지 그날만큼은
임신하기 전과 몸 상태가 비슷했다.
9시쯤까지 기획안을 작성했다.
그 누구도 그걸 요구한 상황이 아니었고,
원한다면 월요일에라도 할 수 있었는데
어쩐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문서를 만지고 싶었다.
언제 이런 에너지가 생길지 장담하기 어려워
내 몫을 제대로 해놓기에는 오늘 만한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오늘은 몸이 괜찮았으니 하고 싶은 만큼 일을 해냈지만
다음주는 어떨지 도통 모를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금 이 시간의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너무 큰 기대나 애써 세우는 다짐 같은 건
잠시 접어두는 것이라 믿는다.
그게 내게도, 아기에게도, 지혜로운 일인 것같다.
집에 가는 길에는 산뜻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다음주는 조금 덜 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