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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내 임신이 뭐가 그렇게 기쁠까

by 로란

20대 후반, 나는 엄마에게 보란 듯이 못 박아 두었다.

"엄마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저 20대 후반부터 엄마로부터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너는 언제 결혼할 거냐"는 관심이 귀찮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꿋꿋했다. 서른이 넘어가고 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금방 결혼을 해서 20대에 아이를 가진 동네 친구들의 이름을 꺼내오곤 했다.


영 효과도 없는 비교를 늘어놓던 엄마는, 엄마가 보기에 그들이 나보다 얼마나 앞선 삶을 사는지, 혹은 내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언급하면서 내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 알면서도 굳이 굳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어놓곤 했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로 결혼을 안 할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쩔 때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의심했다.

엄마는 내가 진정 행복하길 바라는 걸까?

그저 엄마 자신이 편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엄마가 정말로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말해야 맞았다. 아니면 하다 못해 남들과 나를 비교라도 하지 말아야 타당하지 않겠나.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의 엄마가 사랑하는 자신의 딸이 불행하길 바랄 리는 없었다. 그저 우리 엄마의 그런 바람이라는 것도, 내가 그냥 남들 보기에 평범하게 살기를, 그래서 자신의 딸이 주변으로부터 받게 될 무수한 관심과 오지랖을 사전에 차단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볼 따름이다.


그래도 의아한 건 있었다. 30년 넘게 엄마를 가까이서 지켜본 내 판단으로, 엄마는 결혼이 곧 행복이라고 장담할 처지가 못 됐다. 엄마의 결혼은 실패한 결혼이었으니까. 수준 낮은 시집살이를 어지간히 겪어야 했다. 선량하지만 융통성 없고 생활력 부족한 남편과의 삶은 엄마를 지치게 했다. 그런 남편 때문에 하루도 쉴 날 없이 집안의 빚을 갚아 나가며, 두 자녀를 키우는 하루하루만이 그녀가 말하는 '당연히 해야 마땅한 결혼'이 가져다준 삶의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결혼을 권한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랑하는 딸에게 왜 그 길을 권할까. 아니, 정말 엄마는 나를 사랑하나?


그러다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해 보니 당시 엄마는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할 직업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그 시절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결혼은 거의 유일한 삶의 선택지로 여겨졌을 수 있다. 그 당시 나의 엄마는 생계를 목적으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의상 수선실에 다니거나 백화점 판매직이 되거나 동네 세탁소 직원이 될 수는 있었지만 그들은 엄마 자신을 설명하는 정체성이 아니었다. 엄마가 선망하는 최선의 자기 자신은 어디까지나 '좋은 아내'이거나 '좋은 엄마'주변에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래된 엄마와 그의 또래 여성들의 장래희망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절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들은 대학을 가지 않아 무엇을 전공해서 어떤 분야를 남보다 더 오래 공부해 봤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특정 직업을 오랫동안 숙련되게 맡으면서 업계 전문가라 불릴 거란 기대도 없었다. 자연히 남편과 자식이 없는 삶은 아무것도 없는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는 한, 여자의 삶에서 결혼은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이미 그때 많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소수라서 평범한 엄마의 주변엔 드물기만 했다.


그러나 엄마와 달리, 엄마보다 28살이 어린 나는 아주 다른 세상에 산다. 여자도 맘껏 배우고 맘껏 일할 수 있는 사회에 산다. 남자가 없어도 이미 내 명의의 집을 살 수 있을 만큼은 벌고 또 빌릴 수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연애를 통해 사랑을 경험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 기회도 얼마든지 많다. 오히려 결혼하지 않으면 내가 모은 돈으로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소비하며 살 수도 있을 터였다.


내 인생에는 같이 있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하고 즐거운 사람을 만나 평생을 약속하는 옵션도 있지만, 다른 옵션도 충분히 많다. 내가 결혼을 하기 훨씬 전부터 정말로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사람이 아니면 평생을 약속하기 어렵다고 당차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정말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달리 세상에 그다지 든든한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엄마에게, 결혼하지 않는 여자의 삶은 외롭고 고독한 삶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결혼이란 자신이 어쩌다 실패한 것이지 세상 모든 결혼이 실패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엄마가 가진 여러 철학 중 가장 열린 사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서른을 훌쩍 넘겨 정말로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뜻밖에도 엄마는 속상해했다. 그제야 실패한 자신의 결혼이 떠올랐던 것이다. 남편의 가족이 다정한 사람들인지, 남편이 생활력 좋은 사람인지 엄마는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정말 황당할 노릇이었다. 지금도 남편을 엄마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던 그날의 어색한 공기가 생각이 난다. 엄마는 잔뜩 얼어서 남편이 준비해 온 커다란 꽃다발을 엉거주춤 받아들며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이제 다 까맣게 잊어버렸겠지만, 나는 그 순간의 낯뜨거움을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두 시간쯤 어색하게 밥을 먹고 나서였을까. 엄마는 듣던 대로 총명하고 자상한 남편을 보고 마음을 놓았던 모양이다. 그 길로 남동생과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고 한다. 그날은 엄마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엄마가 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또 바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너무나 지루하게도 그것은 내가 하루빨리 자녀를 갖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잔소리를 하면 또 내가 불같이 화를 낼까 봐, 가족 행사가 있을 때 남편에게 몰래 와서 귓속말을 하곤 했다.


"걔한테 물으면 화낼 거야. 너네 아이 생각은 있니?"


이 또한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내 눈에 우리 엄마는 없는 살림에 나와 동생을 욕심껏 키우느라 늘 고생만 했다. 시간과 돈에 매여 살았고, 사생활이랄 것도 없었다. 자식들은 자식들 나름대로 풍족하게 크지 못하니 때때로 눈물 바람인 날도 많았다. 우리가 다 대학에 들어가고 난 뒤, 엄마가 동네 산악회에 들어가 한국 명산들을 하나하나 도장 깨듯 돌아다니던 서너해가 있었다.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사생활의 전부다.


우리가 없었다면 엄마는 더 자유분방하고 다채롭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우리 집에는 우리 집이 나름 여유로웠던 시절에 엄마가 취미로 만들었던 한지공예 테이블과, 손뜨개 인형들이 지나간 호시절을 잊지 못한 표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빛바랜 색으로 낡아 가는 사이사이 엄마의 자식들은 콩나물처럼 자라 어른이 됐다. 어느새 내 눈에 결혼이나 육아 같은 것은 하나도 멋지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삶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많은 것을 갖지 못한 엄마 자신이 자식을 둘이나 두고 엄마라고 불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지금도 말한다. 나로선 의아한 부분이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정답은 같았다. 엄마에게 ‘결혼'이 그러했든, 엄마에게는 '자식을 갖는다는 이유로' 내가 가진 어떤 것이 축소되는 경험이 없었다. 애초에 그 시절 여성들에게는 그것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대단히 가질 기회도 없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엄마에게 출산과 육아는 자신의 삶을 좁히기보다는 확장하는 일이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자식들을 건사하고 그들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직장에 나가고 돈을 벌어 나가는 생활은, 엄마에게 자식이 삶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삶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니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이제 엄마를 맘껏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최근에 임신 7주 차에 들어서고 나서는, 부모님들을 위해서 요즘 유행한다는 '임신 서프라이즈 카드'라는 걸 구매했다. 임신 서프라이즈 카드란, 귀여운 아기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 카드를 열면 초음파 사진을 붙이는 공간이 있어서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해주는 카드다. 유치한 걸 알면서도 부모님들이 얼마나 좋아하실지 궁금해 임신 소식을 이 카드로 알리기로 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양가 부모님들이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서프라이즈 카드를 들고 두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게 어쩜 부모님들 마다 다 똑같으실까 싶어 헛웃음이 났다. 집에 가는 길에는 곧장 시댁 친척들의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너희 시아버지 소원 풀었다!”라는 말까지. 한 사람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실 분들인데, 어떻게 저렇게 온전히 기뻐하기만 하실 수 있을까. 신기했다.


사실 60대를 지나는 부모님들이 보고 싶은 손주의 모습이란, 무해하게 맑은 얼굴을 하고서 오동포동하고 뽕얀 살결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의 갓난 아기 시절에 그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손주들은 아기로만 살지 않는다는 걸 우리 부모님들도 아셨으면 좋겠다. 10대를 지나 성인이 되고, 함께 늙어간다. 그 인생을 단지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섣불리 시작하게 하는 일이 정말 괜찮은 일인지는, 나에게는 아직 어려운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분들은 그 모든 걸 나보다 미리 해보셨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그 억척스럽고 다사다난한 삶 속에서도 끝끝내 행복의 열쇠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족의 존재라고 믿는다면, 그건 그대로 믿어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힘들고 고단한 시간들 속에서도 자식과 함께 부대끼고 울고 웃는 삶은 끝내주게 의미 있는 삶이라고 자신하는 분들이 여기 계시다고. 그래서 그분들은 사랑하는 자식들이 고생할 미래를 염려하기보다는 자식과 함께 풍부하게 살아갈 삶을 권유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보면서.


그러니 그분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진 내가 조금 더 힘을 내볼까? 결심해 보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자식의 존재를 통해서 몰랐던 삶의 의미를 누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이 됐다고 자신하시는 저 말씀들을, 내가 굳게 믿어보고 어려운 것은 해결해 나가며 몸소 겪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우리 부모님보다는 더 많은 삶의 기회와 배움을 가진 세대의 엄마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딸을 낳으면, 결혼을 꼭 하라고 하거나 자식을 꼭 낳으라고 말하는 엄마가 될지 궁금하다.


그래도 나는 내 아이가 자라면 말해줄 것이다. 나는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지만, 세상엔 다른 행복도 있을지 몰라. 그건 엄마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걸 수도 있어. 네가 잘 찾아냈으면 좋겠다.


역시 그래도 나는 우리 부모님보다는 더 많은 삶의 기회와 배움을 가진 세대의 엄마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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