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경험한 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임신을 하고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공통 주제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대개 오래된 학창 시절 친구들은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만나
중간고사나 대입 준비 같은
동질한 과업들을 해결해 나가며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러나 스무살 이후가 되면 생각 만큼
자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각자 진로나 관심사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저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들도
학창 시절과는 달리 서로 다른 타이밍에 일어난다.
누구는 재수를 하는 시간에 누구는 대학 동아리
활동에 빠져있거나 연애에 골몰해 있는다.
같은 20대 시절이라도
돈 버는 게 당장 급한 사람, 어학 연수를 가는 사람,
고시 준비를 하는 사람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나이 마다 계절 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서로 달라져 더이상 같은 학년 같은 반처럼
한 묶음으로 비슷한 여정에 놓이지 않는 것이다.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가 넘어서면 친구들이
생각 만큼 자주 보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오히려 그 시간에 각자 관심사와 당면한 과제에 맞닿아 있는
지인들을 만나느라 바쁘다.
나 같은 경우도
고등학교 졸업 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
오랜 친구들과의 관계를 돌아 보면,
서로 일상을 시시콜콜 나누다가도
잠시 멀어져 있는 날도 많았던 게 떠오른다.
대신 서로 연락이 뜸할 때는 서로의 바쁜 삶을 조용히
응원하면서 연락에 연연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일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두 세시간 남짓 만나서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이색적인 음식을 먹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정도가
아주 적절한 만남의 주기와 농도였던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더 그랬다.
개인적으로 나같은 경우는 내 동갑내기
학교 친구들 보다 3,4년 정도 늦게 결혼을 한 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결혼하는 나이에
빠르고 늦은 나이가 있겠냐 싶지만,
나는 만 34살에 결혼을 했고
내 친구들 대부분은 만 서른 전후로 대부분 결혼을 했다.
그렇다보니 사회 생활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보다 늦게 결혼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동창 친구들은 이미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 딸들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고 있었다.
대신 친구들이 자기 짝을 만나 대소사를 치르는 동안
나는 연애를 하고 각종 모임에 나가느라 바빴고
해외 출장이며, 마케팅 행사를 기획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러는 동안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 또는 시댁 식구들과 오늘은
어떤 즐거운 대화나 갈등이 있었는지,
아이를 가질까 고민하려니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솔직히 그들의 삶을
헤아리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서는
그런 친구들과 대화 거리가 더 많아졌다.
친구들과 나의 동질한 경험이 생겨나서다.
이번에 또 임신 소식을 알리니
마침내 이미 아이가 있는
친구들에게서 이런 반응도 듣게 되었다.
“너무 좋다! 네가 임신을 한다니
우리가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아!”
그것은 내가 대학교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돌리던 날에도 똑같이 들었던 말이다.
“야 너가 우리 세계로 들어온다니
드디어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다!”
9월의 한복판,
임신을 하고 처음으로 용산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히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새삼 이제 내가 친구들의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 단계에 온전히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어쩜 그렇게 셋이 방향이 달랐나 모르겠다.
친구들이 고시 공부를 하거나 이미 취업해 있을 때
나는 스페인 순례길을 걷는다고 외국에 있거나
인턴 공고를 뒤지고 있었고,
친구들이 자기 짝을 만났을 때
나는 내 짝은 누구일까 주변을 탐색했다.
친구들이 임신을 고민할 때
나는 밤 늦은 줄 모르고 야근에 푹 빠져 있었다.
반대로 내가 무언가 하는 동안
학창 시절의 오래된 친구들 역시
그들에게 중요한 일들에 빠져있었다.
그런데도 서로 바쁜 게 끝나고 뭉치면
서로를 경청하고 응원하는 친구로 다시 돌아왔다.
서로가 치열하게 삶을 끌어 안던 20대에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돌아 보면 우리도 고등학교 같은 교실에서는
6명이서 몰려다니던 사이였다.
서로 다른 운명과 생애주기에도
오래 보고 반가워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서로 다른 생김새, 서로 다른 직업,
서로 다른 패션 스타일과 성격을 가진 우리에게
맛있는 식당을 찾아나서는 일 만큼이나
공통적으로 나눌 대화 주제가 늘어나니
그건 그대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학창 시절이 다시 찾아온듯,
우리가 공통의 무언가를 같은 시기에
통과하고 있어서 잠시간 반갑다는 사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또래 친구 사이의 동질한 경험은
언제고 흩어졌다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 마다 고유한 삶의 방향과 속도는 다르다.
같은 시기 서로 다른 욕망과 과제에 골몰하느라
언제고 우리는 다른 시간을 통과하게 된다.
만약 내가 딩크를 결정하거나,
비혼을 결정한다 했더라도
친구들은 나를 멀리서 기꺼이 응원해줬을 것이다.
삶의 방향이 같든, 같지 않든,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태도만이
친구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아주 잘 만큼
우리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