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급 일식문화의상징?
한국 맛집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어느덧 오마카세(お任せ)란 주문방식이 고급 일식의 상징으로 정착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스시가게를 '스시야(寿司屋)'라 하며 평가하는 데에서는 평가자가 가진 일종의 자부심도 전해져 온다.
음식 문화라는 게 가까운 나라일수록 영향을 서로 쉽게 받고, 변형되고, 정착되는 것이니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식 문화(예를 들면 쌈이라든가)가 상당히 정착된 느낌을 받는다.
일본 슈퍼에서는 심심치 않게 각종 한국 식자재를 팔곤 한다. 굳이 한국 식자재점에 가지 않아도 웬만한 양념 등은 근처에서도 구매 가능한 시대가 됐다(아래는 근처 돈키호테 매장).
한국 맛집 블로그들을 보다 기이(?)하게 느낀 건, 최근 일식뿐만 아니라 고급 느낌을 내는 코스요리에까지 오마카세라는 이름이 붙는다는 점이다. 아래 블로그들이다.
'한우 코스/모둠 하고 오마카세는 뭐가 다르지?'란 의문도 약간은 들었지만 오마카세 어감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 때문에 한우에도 거부감 없이 쓰이는 듯싶다.
꽤 오래전 브런치에 쓴 글에서 '노포(老舗)'란 말의 정착 과정을 따져본 적이 있다.
글의 결론은 노포가 과거부터 써온 말이 아니고 상당히 높은 확률로 최근 일본에서 수입됐을 것이란 얘기였다('노포(老舗/老鋪)'를 생각하다). 오마카세는 한자어가 애초에 없다 보니 일본어가 그대로 들어온 셈이다. 아마도 일본말이라는 것도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별생각 없이 근처에 있는 야키토리(焼き鳥)집 구글 리뷰를 보다가 재미있는 평가를 발견해서 소개해볼까 한다. 참고로 이 가게는 긴급사태선언으로 나온 8시 영업단축+술제공금지 명령을 무시 중이다. 조만간 한 번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아래 리뷰다. 별점 테러(별 하나)를 가한 리뷰로 오마카세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다.
「焼き物お任せはやめた方が良いですよ。別に安くなってないし、レビューで美味しいと言われてる焼き物は入ってませんので個別で頼んだ方が良いです。また、1.2本頼んだら、1時間以上焼いてもらえず、忘れてましたwとヘラヘラされました。そのくせ店員は自分の分焼いて食べてる。常連には愛想良いけど一見さんは笑えない接客だと思います。まぁ、二度と行かないです。」
구이 오마카세는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딱히 싼 것도 아니고 리뷰에서 맛있다고 하는 구이는 들어가 있지 않으니 따로 주문하는 게 좋습니다. 또 한·두 개 주문했더니 1시간 이상 구워주지도 않고 '깜빡했습니다'라며 (점원은) 실실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자기 걸 구워서 먹네요. 단골에게는 친절하지만 처음 오는 사람한테는 도저히 웃고 넘길 수 없는 접객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어쨌든, 두 번 다시 안 갑니다.
해당 가게 계열점에도 가본 적이 있으나 저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타베로그 평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https://tabelog.com/tokyo/A1329/A132901/13115150/, 평가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흥미로운 건 오마카세에 대한 반응이다. 고급이라는 뉘앙스보다는 '모둠'의 의미에 좀 더 가깝다고 할까. 싸지 않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점에서 그렇게 느꼈다.
오마카세의 사전적 정의는 '마카세루(任せる)', 즉 '맡기다'의 명사형(마카세任せ)에 존중 어미 오御가 붙은 의미로 음식점에서 쓰이면 말 그대로 '(주방장에게) 맡기겠다'는 뜻이다.
가게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를 함께 낸다는 의미에서 '모리아와세(盛り合わせ)'를 쓰기도 한다.
일반적인 다른 가게에선 어떨까. 보통 '오마카세'를 단독으로 쓸 때도 있지만 뒤에 '코스'를 붙여서 '오마카세 코스'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오마카세 코스 만드는 법(おまかせコースのつくり方)'이란 책.
고급 요릿집의 오마카세 코스.
야키니쿠와 나베요리 오마카세 코스.
한국처럼 '오마카세=고급'이란 이미지가 없다고 하기 어렵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라는 게 본글의 결론이다.
물론 언어라는 건 앞서 적었듯 얼마든지 의미가 변형되고, 재창조될 수 있다. 노포처럼 한국에서도 오마카세가 정착될 수 있을지, 혹은 원래 있던 다른 말, 모둠/코스로 회귀할지 그래서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