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았다 _ 육아일기 (D + 23일)

by 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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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나온 입과 조금은 들린 코. 내 어릴 적 사진과 똑같이 생긴 딸아이가 내 앞에서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 거울을 보며 상상을 한다. 지금 내 얼굴에서 머리만 긴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겠지. 친한 친구들이 말한다.


"어떡하냐. 딸인데 너랑 똑같이 생겼네."

나를 닮았다. 라는 말은 생각보다 큰 울림이 있었다. 어느 시에서는 내 몸 밖에 나의 심장이 뛰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시를 읽을 때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아빠가 된 지금, 이 표현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나의 일부가 아니라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이렇게 온전히 쏟을 수 있을까.


아내의 조리원 퇴소 이후 일주일 정도 경험한 육아는 걱정했던 것보다 단순했다. 배고픈 아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켰다. 아이는 먹고, 자고, 울며 성장했다. 다만 이 단순한 일들은 책장에 책을 꽂는 것과 달리 착착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얼마 먹지 않았는데 잠들었다가 곧 깨서 배가 고프다고 칭얼댔다. 몸이 커지느라 오는 성장통에 용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지만 계속 우는 소리에 나도 울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참고 한다. 내 팔뚝만 한 아기를 안고 있으면 느껴지는 따뜻함도 좋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관대하다. 타인과 나를 똑같이 대하는 사람은 책에서 나오는 성인군자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거실에 김치찌개를 엎었다면 밀려오는 짜증에 불같이 화를 내고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찌개를 엎었다면 짜증이 나도 별도리가 없다. 조용히 치우는 수밖에.


마찬가지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의 똥기저귀를 치우고,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 가며 목욕을 시키는 것도. 나의 일부이니까, 나를 닮았으니까 묵묵히 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천불이 나지만.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5시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운 후 잠이 오지 않아 기록을 남긴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다가 일어나서 이렇게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것 같다. 항상 컨디션이 좋을 때 노트북을 켜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좋다. 덕분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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