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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Aug 01. 2019

맹장아 미안해 (계속)

맹장터진이야기, 네 번째

맹장터진이야기, 세 번째 에서 계속..




Day 7: 토요일

전날보다 나아졌지만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특정 자세에서 조금 더 아프고, 또 가만히 앉아있으면 잦아들곤 했다. 잠을 설친 바람에 조금 늦게 눈을 떴는데 꿈틀꿈틀 거실로 나오니, 애기씨는 벌써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다. 부럽습니다, 애기씨. 아쉽지만 매주 토요일 아침에 열리는 창의미술수업에는 불참하기로 했다. 이번 주엔 포키를 만든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애기씨.


몇 주 전부터 잡혀있던 약속 때문에 아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 애기씨와 단둘이 집에 남았다. 아이의 말이 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말이 꽤 통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할 수 있는 놀이의 폭도 넓어지고 함께 재미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아빠가 우디해. 안녕, 난 우주방위대원 버즈라이트이어다. 아니, 아빤 우디하라니깐. 으응, 알겠어. 역할극도 할 수 있다. 백만 번쯤. 버즈, 도와줘! 웅, 아라써. 무하난 공간, 져~녀며료~!


점심시간이 되어 오징어볶음과 밥을 대령했는데 애기씨가 통 입맛이 없으시단다. 몇 술 뜨지도 않고 배뷸려 타령을 시작하여, 나머지는 내가 먹었다. 아, 맛있다. 밥 한 주걱 추가. 다시 신나게 놀다가 졸린 것 같아 침대에 눕혔더니, 갑자기 엄마를 찾으러 나가겠다며 울먹이는 애기씨.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인지한 나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무슨 요일? 갑자기 울음을 그치며 그가 대답했다. 툐요일! 우뤼 모 재민능거 볼까? 토요일 한정, 넷플릭스 찬스 성공.


토이스토리2 버즈와 버즈의 대결 장면과 보스베이비 시즌2 도서관 편 후반부를 연달아 시청한 우리는 함께 방에 들어가 누웠다. 아이와 함께 곯아떨어졌다가 눈을 뜨니 세 시. 거실에서 잠깐 책을 읽으려는데 사이렌처럼 엄마를 부르며 깨어난 아이.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찾아 나가겠다는 효자. 다행히 말을 빙빙 돌리며 시간을 끄는 사이에 어머니의 컴백. 막상 크게 반기지 않는 효자. 자기, 오늘 저녁때 어머니가 닭 해주신다고 오라고 하셨는데.

다섯 시 반쯤 부모님 댁에 도착한 나는 갑자기 허기를 느껴 맨밥을 퍼먹었다. 아이, 기다려. 조금 기다렸다가 다 같이 먹어. 30년 넘게 같은 소리를 부지런히 듣는 효자. 저녁 메뉴는 전복이 들어간 닭볶음탕이었다. 날개랑 다리만 넣었어. 소스는 새롭게 해봤는데 맛있을지 모르겠네. 우와, 진짜 맛있어요. 일동 찬사를 보낼 때, 점심을 깨작깨작 먹었던 아기 효자가 나타나 두 번째 메인 요리인 낙지를 손으로 퍼먹었다. 어머, 어쩜 저렇게 밥도 잘 먹고. 그러게 어쩜 저럴까요, 어머니.


결국 또 배가 찢어지게 먹었다. 더 먹어, 더 있어. 아니에요, 배불러요. 하지만 디저트는 예외였는지 후식으로 사 온 아이스크림이 또 배에 들어갔다. 갑자기 밀려오는 포만감에 식곤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 한 시간쯤 잠들었다가 귀가. 돌아보니 토요일 역시 맹장에게 미안한 하루.




Day 8: 일요일

일요일은 나름 선방했다. 나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 말해놓고 입이 궁금해 벨리불리 하나를 냉장고에서 슬쩍 꺼내 먹은 정도. 물론 낮에는 애기씨가 먹고 남은 새우통통볶음밥을 쓱싹, 밤에는 애기씨 때문에 갑자기 구운 오리고기에 밥 한 공기를 뚝딱했지만. 그래도 맹장에게 덜 미안한 하루.






맹장터진이야기, 다섯 번째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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