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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Aug 06. 2019

출근하다 말고 입원

맹장터진이야기, 여섯 번째

맹장터진이야기, 다섯 번째 에서 계속..




Day 10: 화요일

화요일 새벽엔 나름 잘 잤다. 그렇지만 출근 전, 아내와 약속한 대로 동네에서 꽤 오래된 병원에 다시 들렀다. 나 역시 너무 오랫동안 아픈 것이 마음에 걸렸고, 그 전날 들렀던 병원과 의사 아저씨는 영 믿음이 가지 않아 찝찝했다. 들어오세요. 네, 제가 지난주부터 배가 아팠는데.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옆에 있는 자리에 한 번 누워보라고 하셨다. 아프시면 말씀하세요. 톡. 톡. 움찔. 꾹. 으읔.


내가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동그란 의자에 내려와 앉는 사이, 의사 선생님은 대뜸 내게 어디 사는지 묻더니 근처 병원 두 곳의 주소를 일러주며 말했다. 어디가 더 가기 편하세요? 제가 소견서 써드릴 테니까 가서 추가 검사를 더 받아보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추가 검사만 받으면 끝이라 생각한 나는 출근하기 더 편한 병원을 골랐다.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휘리릭 소견서를 썼다.


요 앞에서 마을버스 타면 금방 가요. 내려서 길만 건너면 돼요. 간호사님의 말처럼 소개받은 병원은 그리 멀지 않았다. 소개를 받고 왔는데요. 소견서를 보여주고 이름을 적었다. 잠시 후,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로 입장. 맙소사, 벌써 다섯 번째 병원이네. 여차여차하여 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들은 후 소견서를 잠깐 읽었다.


잠깐만 누워보시죠. 내 배를 요리조리 눌러본 의사 선생님은 나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세상에! 놀랍게도 그 순간 나는 조금 감동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그동안 나를 눕혀 진찰한 후에 직접 부축해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아까 짚었던 거기가 아프셨던 거죠? 네, 맞아요. 이미 들으셨겠지만, 거긴 맹장 자리거든요. 일단 몇 가지 검사를 해보시죠. 혹시,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출근하던 길이라. 결과는 금방 나오는데, 결과에 따라서 바로 입원이나 수술을 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그렇군요. 아니, 잠깐만요?


피를 뽑고,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아이고 벌써 터져서 넘어간 것 같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중에 얼핏 뭔가 들었는데, 잘 못 들었겠거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나갔다. 어차피 곧 결과가 나올 테니. 검사 결과는 정말 금방 나왔다. 다시 진료실에 앉은 내게 의사 선생님은 허탈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방금 초음파 결과를 받았는데, 우려했던 대로 맹장이 터졌네요. 허허, 그렇군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내겐 그저 검은색 흰색일 뿐인데 선생님은 열심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세요, 이 부분이 좀 이상하게 생겼죠?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수술밖에 없는데, 언제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하니까 CT촬영을 좀 할게요. 다시 검사실로. 오늘 되게 자주 오시네요? 간호사님이 밝게 맞아주셨다. 허허, 그러게요.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혹시 입원이나 수술하신 적 있으세요? 아뇨. 약이나 특별히 알러지 있는 건요? 없어요. 아, 고양이 알러지가 어렸을 땐 없었는데 생겼어요. 아, 고양이. 증상이 어떤가요? 막 엄청 심한 건 아닌데 막 간질간질하고 콧물도 나고. 알러지가 맞네요. 간호사님은 알러지라고 적힌 칸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고양이라고 적었다. 몹시 바보가 된 기분.


CT촬영은 해보셨어요? 네, 건강 검진할 때. 그 엄청 큰 소리나는 거 아니에요?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이제 할 촬영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조영제가 뭔가요? 정말 쉽게 설명하자면 혈관에 색을 입혀서 촬영했을 때 구별되도록 하는 약이에요. 모르시는 걸 보니까 맞은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먼저 반응 좀 볼게요. 조금 따끔해요. 따-끔.


익숙한 듯 낯선 기계 위에 눕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 담요를 덮어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아까 설명 들으셨죠? 검사는 5분 정도면 끝나는데 혹시 중간에 아프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말씀하시면 저 안에서도 다 들리거든요. 조영제 들어간 다음에는 열이 좀 오를 수도 있어요. 어지럽거나 메스껍거나, 암튼 불편하신 게 있으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럼 시작할게요. 저 혹시, 눈을 뜨고 있어도 되나요?


다시 진료실. 내겐 조금 더 선명한 검은색 흰색일 뿐인데 선생님은 또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세요, 여기는 좀 뿌옇고 뭔가 이상하죠? 그런 것 같네요. 그럼 수술하는 건가요? 수술은 언제 하든 무조건 해야 하고요. 문제는 언제, 어떻게 하느냐인데. 지금 상태를 조금 더 설명해드릴게요.


이윽고 전문적이지만 쉽고, 자세하지만 간단한 내 몸속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 번 들어서는 잘 이해가 안 가실 수도 있으니까 이따가 조금 더 설명해드릴게요. 대강 이해하긴 했는데, 이따가요?


네, 조금 이따가 병실에서요.






맹장터진이야기, 일곱 번째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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