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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Aug 13. 2019

아침부터 점심 생각

맹장터진이야기, 여덟 번째

맹장터진이야기, 일곱 번째 에서 계속..




Day 16: 월요일

식탐은 있지만 식욕은 없다 주장해온 나지만, 갑자기 입원하여 금식 통보를 받은 이후 식욕이 폭발했다. 앉으나 서나 먹는 생각. 병실에서 와썹맨을 보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던가.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발걸음이 이토록 가볍다니. 우동아 내가 간다.

급작스레 병가를 내고 입원했던 아저씨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타났으니, 맹장이 터졌다는 소문을 들었던 이들은 당연히 수술을 마친 줄 알았다. 괜찮으세요?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더 쉬시지. 아, 아직 수술은 안 했습니다. 네? 맹장이 터졌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수술은 조금 미뤄졌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잠시 회의실 B로 모여주세요. 네, 여러분들을 한 곳에 불러모은 이유는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을 하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몸 상태에 대해 간략한 브리핑을 드리고 이어서 Q&A 시간을 갖겠습니다. 괘씸한 상상을 잠깐 했지만, 실제론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분 한분께 성의있게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수술한 거 아니에요? 네, 다음 주에 할 것 같아요. 바로 안 해도 괜찮아요? 네, 지금 하면 수술 범위가 넓어서 우선 항생제 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런 경우도 있어요? 저도 처음이라서 모르겠지만, 여기 있네요. 주변 부위가 부어있어서 그걸 가라앉히는 거래요. 지금 수술하면 그 부분까지 같이 떼야 된다고. 이번 주 금요일에 외래 진료 보고 수술 날짜 잡기로 했어요. 그럼 점심은 또 죽 드시는 거예요?


아뇨, 저 우동 먹을 건데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Day 20: 금요일 (외래 진료)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우동과 메밀 등 좋아하는 면류를 잔뜩 먹었지만, 목요일 점심에는 죽을 먹었다. 다음날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무엇을 먹었느냐 묻거든, 어제는 죽을 먹었습니다, 답하려는 얄팍한 요량.


금요일 아침,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일주일간 특별히 아프거나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묻고, 배를 조금 만져보더니 수술 전에 CT를 한 번 더 찍어볼까 생각했지만 상태가 괜찮은 것 같으니 생략하자고 했다.


그럼 수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충수돌기를 잘라낼 거에요. 배꼽 밑에 2~3cm 정도 구멍을 뚫어서 진행 할텐데, 막상 열어보니까 조금 어렵겠다 싶으면 구멍을 한 개 더 뚫을 수 있습니다. 여기 아래쪽에.


수술은 보통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고, 수술 후에 2박 3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하시는 거로. 그리고 한 3~5일 정도 있다가 외래 진료 보러 한 번 오시고요.


수술은 전신 마취로 진행되는데, 수술을 마친 다음에도 폐에 마취 가스가 차 있기 때문에 심호흡이랑 기침을 많이 해주셔야 돼요. 배가 좀 아플 텐데 그래도 열심히 해주셔야 됩니다. 안 그러면 열이 날 수도 있고 심할 경우에는 폐렴에 걸릴 수도 있어요. 엊그제도 어떤 환자분이 시키는 대로 안 했다가 열이 많이 나서 5일 동안 입원했어요.


합병증이 있을 수 있고 수술 후에 누출, 출혈, 상처, 장 기능 손상, 유착 등이 일어날 수 있는데 극히 드뭅니다. 정말 극히 드물지만 아셔야 되니깐 말씀드리는 거예요. 또 목이 따끔거리거나 소리가 잘 안나올 수 있는데 아까 말씀드린 가스 때문이니까 기침이랑 심호흡 의식해서 많이 하셔야 돼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Day 21: 토요일

토요일엔 누나의 생일을 맞아 어머니가 차려주신 수라상을 함께 나눴다. LA갈비부터 생일케잌까지 배불리먹고 조금 후회. 맛있는 걸 어떡해. 그래도 약은 잘 챙겨 먹었으니까.




Day 22: 일요일

일요일엔 아내가 구워준 스테이크. 아스파라거스와 양파, 마늘 그리고 방토. 맛있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12시부터 금식이라고 했으니까 11시 즈음 물 벌컥벌컥 마셔야지. 하지만 깜빡하고 기절.


그렇게 배부른 저녁과 목마른 새벽이 지나고, 드디어 수술 날이 찾아왔다.






맹장터진이야기, 아홉 번째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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